새해 남북관계 어디로

올해 남북관계가 1월 들어 속속 모습을 드러낸 한미간 합의들이나 협의내용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주목된다.

새로운 한미 합의사항들은 북한의 반발이나 입장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변수 내지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사항으로는 지난 19일 한미 장관급전략대화에서 우리측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주기로 합의한 것과, 미국이 요청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협력방안 8개항 가운데 5개를 수용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한반도 군사환경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측면에서, PSI는 북한이 자신들의 고립.압살을 겨냥한 미국의 적대행위로 간주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PSI 협력방안과 관련, 우리 정부는 훈련 참가가 아니라 참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한미군사훈련에 대량살상무기(WMD) 차단훈련이 들어가게 된 것은 북한의 ‘반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합의사항은 아니지만 위폐 문제 협의과정도 찜찜한 대목이다.

서울을 찾은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이 “한국이 WMD 확산주범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힘써 달라”고 우리측에 요청했다고 24일 주한미국대사관측이 밝힌 것도 크게 보면 악재의 범주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외교통상부가 미 재무부팀으로부터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받은 바 없다며 강력하게 반박했지만, 북한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과 우려는 북한의 반응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2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종함에 따라 남조선은 미국의 북침전쟁 기지로서 뿐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병참기지로 전락하게 됐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PSI 역시 비슷한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욱이 북한이 작년 12월 제17차 장관급회담에서 올해 제거해야 할 3대 장벽 가운데 하나로 한미연합훈련을 문제삼았다는 점은 이런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 내에서 3월 말 제18차 장관급회담이 한미연합 전시증원(RSOI) 및 독수리훈련(FE)과 시기가 겹친다는 점을 감안, 연기 문제가 거론된 것은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는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날 선 반응이 회담 개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과거 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이 보인 반응이 어떠했는 지를 정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매년 하는 군사훈련을 놓고도 정부가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서 전략적 유연성이나 PSI 변수는 북한의 일회성 비난에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북한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눈치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전략적 유연성이나 PSI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남북관계가 후퇴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들 문제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에 따라 생긴 구조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반발이 있더라도 지속성을 띠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경우 북한의 대남전략에 변화가 생기기보다는 회담장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활용하는 선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같은 관측의 근저에는 남북관계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에 접어들었고북한이 남한을 필요로 한다는 평가가 깔려 있다.

우리측이 북한 대외무역에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이고 우리 정부는 매년 엄청난 양의 비료를 무상지원하고 쌀 차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으로서는 지난 해에 합의한 경공업 원자재를 우리측으로부터 받아야 할 입장이고 주공전선으로 삼은 농업의 복구를 위해 농업협력도 필요로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9.19 공동성명이 남북대화와 한미공조가 맞물리면서 이뤄낸 성과로 꼽힌다는 점에서 남북대화의 끈을 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와 맞물려 대화는 이어지지만 남북관계는 경협에 계속 무게가 실리는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회담장에 나오겠지만 우리측이 중점을 두는 군사회담의 개최나 경협 현안에 대한 군사적보장조치 확보, 국군포로.납북자의 생사확인 등에는 쉽게 응하지 않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인 셈이다.

이런 관측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북한이 내세운 정경분리 원칙이다.

북한은 작년 12월 제주도 장관급회담 당시 기본발언에서 “새해부터 북남 경제협력을 정경분리의 원칙에서 핵문제나 외세의 간섭에 구애됨이 없이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적인 협력사업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남북경협이 민족 공동의 번영을 위한 것인 만큼 어느 일방의 정치적 목적을 달 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어떤 정치적 조건이나 외부세력의 간섭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게 북측의 논리였다.

이런 북한의 태도와 최근 불거진 전략적 유연성이나 PSI 변수를 고려할 때 조기개최에 양측이 합의한 군사당국자회담 개최 여부와 2월 21∼23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7차 적십자회담 내용은 향후 남북관계를 점칠 수 있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특히 군사당국자회담의 개최시기를 계속 잡지 못한다면 수산협력이나 열차 시험운행 같은 경협 현안의 진전은 물론 남북 대화를 통해 평화체제 논의에 불을 댕기겠다는 우리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PSI 등도 변수가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는 동북아 정세를 좌우하고 있는 6자회담의 향배에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보다 일반적이다.

5차 2단계 6자회담이 위폐공방의 파고를 넘어 2월이라도 열려 북핵 포기와 평화체제, 경제협력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방안 논의에 성과를 낸다면 남북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하지만 6자회담 개최가 계속 무산되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과 PSI 문제 등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남북관계에 악조건을 조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우려를 접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