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새로운 인민군 포스터를 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포스터는 ‘미제’ 등의 표현으로 대적(對敵) 개념을 강조해오던 통상적인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8일 데일리NK에 “지난 9월 인민군출판사에서 새로 선전화(포스터)를 발간했다”며 “내부 검수를 마친 선전화는 9월 군 잡지에도 실리고, 각 군부대 당위원회 정치부 선전지도원들이 받아 연대, 대대, 중대, 독립단위 소대 정치지도원들에게 배포됐다”고 전했다.
실제 본보가 입수한 9월 인민군 포스터에는 ‘전쟁만을 생각하고 싸움마당을 안고 살자’라는 문구와 함께 화염 속의 인민군 장병이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특히 이 포스터 속 인민군의 군복과 견장(하전사 기준)은 군종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배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해군은 해군복에 검은색 견장이, 항공 및 반항공군은 공군복에 하늘색 견장이, 국가보위성 소속 국경경비사령부는 위장군복에 녹색 견장이, 육군은 고유 군복에 병종별로 각기 다른 색의 견장으로 그려져 각 단위에 발행됐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인민군 포스터는 하계훈련, 동계훈련, 6월 군기확립일, 8월 선군정치 개시일(선군절) 등 특정 계기는 물론 정세 긴장이 고조될 때 총정치국의 지시에 따라 인민군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선전 의미가 내포돼 있는 셈이다.
이번 포스터는 통상 7~9월에 진행되는 인민군 하계 전투정치훈련이 마무리되는 9월에 발행됐다는 점에서 군 내부적으로 군인들의 긴장감 저하와 기강 해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포스터에 미국 등 북한군이 주적(主敵)으로 삼고 있는 대상에 대한 적대적 문구나 그림 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9월의 정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앞서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갖고 실무협상의 조속한 재개에 합의했으나, 이후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10여 차례 시험발사하는 등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9월 초순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성명을 통해 협상 복귀 의사를 밝힌 뒤,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16일),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20일), 김계관 고문(27일) 등이 잇달아 대미 담화를 냈고, 미국에서도 긍정적 반응을 내놓으면서 모처럼 대화 분위기가 마련됐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9월 선전화는 전쟁마당의 불벼락을 묘사했을 뿐 미국, 일본, 남조선(한국)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면서 “대적 관념이 없는 이러한 선전화는 상당히 보기 드문 것”이라고 평했다. 북미가 서로 유화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비핵화 협상이 다시 궤도에 오르는 듯했던 9월의 정세에서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대미 적대적 표현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이밖에 소식통은 이번 인민군 포스터에 대한 북한 군 내부의 반응과 관련해 “그동안 계속 받아오던 교양이기 때문에 대체로 시큰둥하다”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