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 만들어진 ‘북한 군부 주도론’

“최근 사태는 국제정세에 어두운 강경 군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D대학 K교수, 17일 C일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일부 군부 강경파의 도발이 아닌가 한다.” (열린우리당 K의원, 12일 청와대 만찬)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킨 것에는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C의원, 14일 라디오 인터뷰)

“북한 군부 힘이 너무 커진 것 같다. 군부의 힘은 미일(美日)의 압박 고립정책에서 나온다.” (Y대 M교수, 18일 C일보)

“김 위원장의 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다.” (정부관계자, 18일 D일보)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하자는 군부와 강경파들의 손을 들어줘 강력한 지도자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호주 M대 P교수, 14일 라디오 인터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장관급회담 결렬 등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북한문제 전문가 일각에서 ‘군부 및 강경파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주장은 자유이다. 그렇게 추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장과 추론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북한의 군부 강경파가 작금의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분명히 적시하여야 할 것이다. 누구인지 구별하여 말할 수 없다면 군부 강경파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일말의 구체적 증거라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총정치국의 아무개 대장이 강경파”라든지, “무력부 작전국에서 제출한 ○월 ○일자 문건에 의하면~”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폐쇄적인 북한사회를 대상으로 분석하면서 그런 식의 분류와 증거 확보가 가능할 수 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논거(論據)를 중요시하는 전문가일수록, 팩트(fact)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일수록 ‘최근 사태는 북한 군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식의 책임성 없고 두루뭉실한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18일자 H일보는 “군부 입장에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국면에서 개성공단 같은 최전방지대 개방 등 많은 몫을 내놓았지만 자신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없었다는 게 불만”이라면서 북한 군부의 누구를 인터뷰해본 듯 기사를 쓰고 있으며, 같은 날 D일보는 “북한이 미사일 7발을 발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2006년 7월, 평양에는 ‘대미항전’을 부르짖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다”며 마치 현장에서 보고 들은 듯 기사를 시작하고 있다. 실감 있게 기사를 쓰는 것은 좋지만 그런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기자는 그 불만을 어디서 들었는지, “대미항전을 부르짖는 강경파”가 대체 누구이며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강경-온건파 대립, 증거가 없다

북한에 군부와 비(非)군부가 대립하고, 강경파가 온건파가 의견충돌을 빚고 있다는 주장은 몇 년 전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물으면 대체로 ‘북한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북한은 남북간의 접촉에서 수세에 몰리거나 특별히 변명할 거리가 없으면 ‘나는 당신들(남측)의 견해를 존중하는데 우리 쪽에서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강경파)이 있어서……’라며 회피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사실 이런 수사(修辭)는 기본적인 협상술이다. 가격흥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저는 그 가격에 드리고 싶지만 우리 회사 방침이……”라거나 “제가 깎아드리면 다른 사업자들이……”라는 세일즈맨들의 핑계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진실일 수 있지만 여기에 호응해주거나 속아버리면 결국 제대로 된 흥정을 해볼 수가 없다.

하물며 세일즈맨들도 회사 규정집을 보여주거나 사업자간에 합의된 가격표 등을 짚어가며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려 애를 쓰는데, “군부(또는 강경파) 때문에 힘들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냥 그대로 믿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지극히 순진하거나, 혹은 경솔하다. 최근 남북간 열차시험운행에 군부가 반대하고 있다고 북한이 주장하고, 이번에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미사일 발사는 군부가 한 일이라 모른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실증되지 않은 이상 핑계거리 정도로 받아넘겨야 한다. 그것을 군부-비군부, 강경-온건의 대립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탈북자 “김정일이 바로 군부”

북한 군부 강경파의 존재와 그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구체적 물증을 댈 수 없다면, 최소한 그와 관련한 북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답은 정반대다.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층인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북한의 강온파 대립 주장에 대해 수년 전부터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지적해왔다. 최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황 전 비서는 “외무성에서 복잡한 문제가 일어나면 김정일에게 물어보는데, (김정일이) ‘그거 군부가 반대한다고 그래라’ 이렇게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전 비서뿐만 아니라 외교관이었던 H씨, 인민군 장교 출신의 C씨도 북한의 강온파 존재에 대해 물으면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외협상의 전 과정에 사소한 결정까지도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탄약상자 한 통이 옮겨지는 것도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어느 누가 그룹을 지어 강경-온건파를 형성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요컨대 북한에 ‘군부의 입김’이란 없다. 북한에 군부가 있다면 바로 김정일이 군부 자체이다. 백 번 양보해 북한 정권 내에 일정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 체제의 성격이나 북한의 행동을 재평가하도록 만드는 과학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최근 사태는 강경 군부가 주도한다”는 식으로 자꾸 무책임한 발언을 하면 안 된다.

‘북한 강경 군부론’을 대표적으로 주장하고 다니는 어느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10여일 전만해도 그것을 ‘협상용’이라면서 “(북한이) 당장 시험발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여러 신문과 매체를 통해 단정적으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김정일이) 군부를 전면에 내세워 돌파해보려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풀이하고 “내부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상상 섞인 분석까지 하고 있다. 북한이 좀 합리적인 행보를 보이면 개혁 온건파 탓, 비이성적 행보를 하면 군부 강경파 탓이라는 간편한 해설은 누구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학자라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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