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앞두고 별세..”며칠만 더 기다리셨어도”

반세기 넘게 기다리셨는데 상봉날까지 잡아두고 돌아가시다니…”

고 변경천(88) 할아버지의 유족들은 21일 연합뉴스에 고인의 소식을 전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함경남도 북천군이 고향인 변 할아버지는 제5차 화상상봉(3.27~29) 대상자로 확정됐으나 20일 끝내 노환으로 눈을 감았다. 북녘 가족들과 상봉을 열흘도 채 남겨두지 않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평소 아버님이 건강하셔서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엊그저께, 엊그저께’라고 되뇌이셨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나중에 휴대전화 문자를 보고서야 아버님이 화상상봉자로 확정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변 할아버지의 아들 길재(52)씨는 “병상에 누운 아버님께 ‘엊그저께’가 무슨 뜻인지 적어달라고 했는데 ‘사’자밖에 못 쓰고 정신이 혼미해지셨다”며 “당시에는 그것이 ‘상봉’을 뜻하는 줄 알아채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이번 화상상봉에서 아들 명재(68).홍재(58)씨와 딸 선옥(66)씨, 손자 석준(47)씨 등 북녘 가족과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상봉확정 소식을 전하지도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평소 고향 절골마을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마주 앉았다 하면 마을 앞 바닷가, 모래언덕을 떠올리며 북에 두고온 가족 이야기를 하셨는데..언제든 상봉날이 잡히면 같이 만나러 가자고 말했는데..이렇게 갑작스레 돌아가시다니요.”

1951년 1.4후퇴 당시 변 할아버지와 함께 내려온 사촌동생 변경일(74)씨는 “형님이 고향에 있는 부모님 제일을 몰라 생신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평소 형수님과 아들딸을 무척 그리워했다”며 목이 메었다.

아들 삼형제(길재.국재.국일씨)를 포함한 변 할아버지의 남녘 유족은 이번 화상상봉에 나가 북녘 가족을 만날 계획이다.

길재씨는 “북에 있는 형님이나 가족을 보면 (아버님이) 피난 나온 뒤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셨나 대신 여쭙고 싶다”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버님의 고향을 찾아가고도 싶다”고 밝혔다.

다른 유족은 “그렇게 건강하셨는데..좀 더 일찍 만날 수 있도록 해주지, 원망스럽다”는 말도 했다.

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이며 장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실향민의 마지막 안식처인 파주 동화 경모공원에 마련된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7월 북측에 이산가족의 생사를 의뢰한 남측 화상상봉 후보자 300명 가운데 약 20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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