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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한국사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던 ‘광우병사태’의 원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한미 FTA 타결 문제와 결부됨으로써 광우병 위험에 대한 왜곡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일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우병의 세계적 발생 양상과 전망’ 주제의 국제심포엄에서 홍성기 아주대 대우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처음 발생했던 2003년 12월,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앞둔 2005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한미 FTA 반대 운동이 축적된 결과”라며 이 같이 분석했다.
홍 교수는 이어 “그동안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토론카페 ‘아고라’, MBC PD수첩, 친북반미단체의 배후 등의 견해가 있었지만 이들은 촛불시위를 촉발한 역할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대한수의학회, 시대정신, 의료와 사회포럼, 한국수의공중보건학회,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등이 공동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에서 홍 교수는 ‘한국에서 광우병사태의 발생과정’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PD수첩이 결정적 순간에 ‘가능성에서 사실’로 비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PD수첩만으로 촛불시위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마치 세계1차 대전을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 대공을 암살한 사실’에서만 찾는 것과 다름없다”며 촛불사태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촉구했다.
홍 교수는 촛불시위가 확산 된 배경으로 우선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꼽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OIE(국제수역사무국)에 대해 폄훼했고, 이명박 정부는 OIE기준을 협상타결의 근거로 제시해 국민의 분노를 불러왔다”며 “OIE 기준으로 식품의 안전성을 놓고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진행해 국민의 건강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깊은 전문 지식 없이 단정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이 강조됐던 것이 국민들에게는 ‘전문가의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 ‘환경보호’, ‘신자본주의’ 등 광범위한 문제와 결부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홍 교수는 또 일본정부가 일본의 유권자를 의식해 ‘비과학적 태도’를 보인 것도 촛불시위가 확산됐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일 양국의 미 쇠고기 수입위생규정 차이는 곧바로 한국정부의 실패 또는 비과학적 태도로 이해됐고, 미국과 재협상을 해야 할 당위성과 가능성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촛불시위 발생이후, 정치, 언론, 지식인, 문화계의 주요 인물들이 발생원인의 정당성에 대한 천착(穿鑿)없이 인기 영합적으로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확산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촛불시위의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 등 전반적 실정(失政)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보는 견해와 관련,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고통이라는 것이 고작 4개월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며 “이 기간이 고통이 잠재화 되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을 만큼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날 ‘광우병의 발생 양상’이란 주제의 기조발표에 나선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광우병은 1972년 처음 육골(肉骨)분 사료를 소에 사용해 발생했던 질병”이라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자 리처드 로즈 박사는 1997년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2015년이면 전 세계 수십만 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예견할 정도로 우려가 컸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2008년 8월 다시 로즈 박사는 ‘내가 예상했던 인간광우병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광우병은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 할 것’이라며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담배 한 개비로 암에 걸리거나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 미국,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등 소를 축산하고 있는 주요 18개국에서 광우병은 1989년 10,203건이 발생했고, 1992년은 37,316건이었지만, 2007년 영국에서 67건을 포함 141건, 2008년은 6건에 불과했다”며 “광우병은 단기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989년 이후 발생한 190,410건 중 99.97%가 EU국가에서 발생했고 나머지 0.03%는 미국, 캐나다, 일본 3개국에서 발생했다”며 “이 중 미국은 2005년 1건, 2006년 1건 2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교수는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는 축산업자들의 윤리적 운영에 따라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광우병 발생을 막기 위해 “앞으로의 사육체계는 환경 친화적, 자연 생리학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안병직 (사)시대정신 이사장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문제를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와서 논의하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이 오히려 광우병에 대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때”라며 “지난 5월 우리사회가 열병을 앓았던 사태의 원인을 차분히 따져 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며 심포지엄 개최의 의미을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홍 교수와 이 교수를 비롯해 영국 수의청의 제임스 호프 박사, 일본 식품안전위원회 다카시 오노데라 박사, 미 캔사스 주립대 유르겐 리히트 교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주이석 질병진단센터장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