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주얼리호 피랍에서 구조까지 긴박한 순간들

삼호해운 소속의 삼호주얼리호(1만t급)는 15일 12시40분(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스리랑카로 이동하던 중 오만과 인도 사이 인도양 북부의 아라비아해 입구에서 피랍됐다.


화학제품 1만6천t을 탑재한 이 선박에는 한국인 8명과 인도네시아인 2명, 미얀마인 11명 등 총 21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삼호주얼리 피랍 소식을 접한 우리 정부는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거쳐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퇴치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를 피랍 해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16일 00시30분 에티오피아 지부티항에 정박 중이던 청해부대의 주력함 최영함이 긴급 출동해 18일 오전 4시 피랍해역인 이라비아해 입구에 도착한다.


정부는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는 방침을 정하고 선원 구조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최영함이 작전개시 시기를 저울질하던 중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8일 오후 8시 삼호주얼리호를 피랍한 해적이 5노티컬마일(1노티컬마일=1.8㎞) 떨어진 해상에서 항해 중이던 몽골 선박을 추가 피랍하기 위해 해적 자선을 하선한 것이다.


해적들은 인질을 본거지로 빨리 데리고 가기 위해 다른 선박을 또 피랍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최영함은 십수명의 해적들이 둘로 분리된 틈을 타 링스헬기와 고속단정을 동원한 작전에 돌입했다.


링스헬기는 자선에 탑승한 해적에 경고 및 위협 사격을 가했고 총격을 받은 해적 수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


특수전 요원(UDT/SEAL)이 탑승한 고속단정은 삼호주얼리호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총격을 받고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장병 3명이 파편상을 입고 오만의 한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당시 부상당한 요원은 소령 1명, 상사 1명, 하사 1명으로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당시 총격전으로 최영함은 해적 자선 2척 중 1척, AK소총 3척, 사다리 등을 노획했다.


19일 오전 3시25분에는 삼호주얼리호로부터 약 13㎞ 떨어진 지점에서 미상의 선박이 접근해 또 다시 긴장감이 조성됐다.


수 차례의 경고방송에도 계속 접근하던 선박은 경고사격을 하자 멈췄다.


해적 모선일 수 있다고 판단한 청해부대는 미상 선박에 대한 검색을 실시했으나 이란 국적의 선박으로 해적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훈방 조치됐다.


같은날 오전 10시20분에는 연합 해군사령부(CTF-151)에 속한 오만 함정 1척이 작전에 참여했다. 연합 해군은 언제든지 해상초계기(P-3C)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선장의 기지로 정선해 있던 삼호주얼리호가 19일 11시40분 3노트(1노트=1.8㎞)의 속도로 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20분에는 소말리아 방향인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6노트의 속도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청해부대는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를 끌고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선원들의 안전은 삼호해운과 선원들의 전화통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최영함은 2노티컬마일 정도의 거리로 삼호주얼리호를 쫓아가면서 투항 권유 방송을 하고 경고 사격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경고방송을 하다가 소말리아어로도 방송을 시도했다.


해적들이 본거지로 돌아가기 전에 구출 작전을 끝내야 하는 청해부대는 다시 작전시기를 저울질했다. 삼호주얼리호와 소말리아와는 800노티컬마일 이상 떨어져 있어 6노트의 속도로 이동하면 엿새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계속 시간을 끌면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청해부대는 21일 오전 5시 구출 작전에 돌입했다.


고속단정으로 삼호주얼리호에 진입한 특수전 요원들은 총격전 끝에 오후 3시쯤 해적들을 제압하고 억류돼 있던 선원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구출과정에서 선장이 복부에 총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장병과 선원 중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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