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군 문학소조 반체제 사건’ 누명쓴 나의 첫사랑

▲2005년 회령 자유청년동지회가 김정일 얼굴에 낙서를 한 벽보 ⓒ데일리NK

대선의 계절이다. 모두의 관심이 선거에 집중되지만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선거라는 이름이 나오면 필자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

때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나오기 2개월 전이었다. 양강도 혜산시 경제전문학교 청사에서 새 경제관리체계에 대한 재정 부기 강습을 받고 있었다. 강습기간 중에 ‘반(反) 간첩 투쟁전람관’ 참관 일정도 있었다.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김정일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반 간첩투쟁전람관과 계급교양관을 신축하고 대대적인 계급투쟁, 반미 반 간첩투쟁을 선전했다.

인민반 혹은 직장별로, 대학은 물론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 반 간첩투쟁전람관과 계급교양관을 참관하도록 의무화 됐다.

혜산시 혜산동에 자리잡고 있는 반 간첩투쟁전람관은 2층으로 된 건물로 도 보위부가 직접 관리한다. 이곳에는 해방 후부터 간첩, 파괴암해분자들의 책동이라는 것을 전시해 놓았다.

혜산시 반간첩투쟁 전람관 자료 대부분 부실

이 전람관을 돌아본 양강도 출신 탈북자들도 이구동성 말하지만, 이곳에는 간첩활동, 반정부 음모를 꾸몄다는 사람들의 사진이나 진술서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은 원본 사진보다는 속사로 그려놓았다든가 그 무슨 간첩행위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해 놓은 것이 많다. 진열품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깡통(캔)으로 만들었다는 폭탄, 불을 놓았다는 휘발유병, 그 무슨 기계를 파괴했다는 공구, 이런 것들이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조잡하기 그지없다. 그 외 자필 진술서가 몇 장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전람관을 참관하던 중 강사가 어느 한 사람의 사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자는 우리공화국을 내부로부터 파괴하기 위해 남조선 괴뢰안기부와 내통하고 ‘양강일보’와 생활총화 노트를 비롯한 반 공화국선전에 이용될 자료들을 적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자가 넘겨준 자료들은 지금 남조선 괴뢰들이 반공화국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전에 있는 ‘반 사회주의 전람관’이라는 곳에 진열되었다고 합니다”

필자는 지금도 대전시에 ‘반 사회주의 전람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곳이 있다면 그 사람이 넘겼다는 자료라는 것을 한번 보고 싶다.

나의 첫사랑이 반정부 사건 주모자

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곳에 전시된 모든 내용들을 사실로 믿었다. 정말 저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속에 증오심도 끓어 올랐다.

그러나 필자의 이런 생각은 1층을 관람한 후 2층에 올라서는 순간 바뀌게 됐다. 1층이 대체로 해방 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자료들이었다면 2층부터는 1980년대 이후의 자료들이었다.

곳곳에 전시된 자료들을 관람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외화벌이사업소 부기원이 나를 툭 치며 “얘, 저기 우리 삼수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판 앞에 다가선 순간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삼수군 문학소조사건’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사건관련자들의 사진이나 본인들의 진술서조차 없는 전시판이었다.

삼수군 문학소조 책임자와 그 일당들이 만든 반 정부조직성원들이 그 무슨 음모를 꾸미다가 일망타진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곳에는 내가 항상 그리워하는 오빠의 이름이 있었다. ‘강철식’

김정일 문학 부흥운동의 희생양

‘철식 오빠가 반동이라니?’ 나는 그 당시에도 믿지 않았고, 지금도 전시된 내용을 믿지 않는다.

‘삼수군 문학소조사건’이란 군 문화회관 문학소조책임자가 문학동아리에 속한 청소년들과 함께 반정부 음모를 꾸몄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그것은 1993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김정일이 ‘주체 문학론’이라는 것을 내놓고 문학예술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한다고 떠들던 때였다.

소문난 북한가요들인 ‘휘파람’ ‘도시처녀시집와요’ ‘반갑습니다’ ‘처녀시절’같은 노래들이 다 이시기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문화부흥운동 비슷하게 벌일 심산이었던 것 같다.

당시 김정일은 문학예술 혁명이라는 구호로 전국에 문학소조활동을 활발하게 벌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지시에 따라 각 문학소조와 문학통신원 조직들이 새롭게 조직되었고 도 작가동맹을 중심으로 군 문화회관에서 농촌까지 문학소조가 확산되었다.

양강도 삼수 땅에도 그 여파를 타고 도 작가동맹 후보맹원이었던 문회회관 지도원을 책임자로 문학소조가 생겨나고 활발히 운영되었다. 그 안에는 군 조림사업소에서 일하며 대학에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필자의 첫 사랑인 철식 오빠도 있었다.

김정일 충성분자가 반체제범으로 몰려

철식 오빠와 나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 살았다. 군대에 나간 나의 오빠와도 중학교시절 한 학급에서 공부했다.

혜산시에 있는 도 경제전문학교를 졸업한 나는 자그마한 기업소 부기원을 하고 있었고 오빠는 사회에서 일하면서 대학으로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학에 대해 거리가 먼 내가 그때의 실정은 잘 알 수 없지만 삼수 문학소조가 대단했던 것 같았다. 오빠도 ‘도 문학경연’에서 1등을 하고 시상으로 ‘옥영이’, ‘생활의 길’이라는 소설책과 양말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철식 오빠가 근무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군 문학소조 책임자가 보위부에 잡혀갔다는 것이다. 문학소조 책임자는 키가 작고 다부지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제대군인이면서 아는 것도 많아 주변 사람들 속에서 인기가 높은 사람이었다.

오빠도 문학소조 책임자가 보위부에 간 이유를 몰랐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내일쯤이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에 나온다던 책임자는 며칠 되도록 나오지 않더니 도 보위부에 이송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어 문학소조책임자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반 정부조직을 꾸미려 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필자는 가슴이 철렁해졌다. 혹시 철식 오빠가 개입됐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오빠는 거듭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또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오빠를 믿었다. 솔직히 그때 철식 오빠는 김정일을 대단한 존재로 숭배하고 있었다.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지나치다 할 정도로 떠받들고 있었다.

중학생까지 반체제 사건에 연루

책임자가 잡혀간 지 보름 만에 오빠도 보위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오빠와 함께 다른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었다. 나는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는데 오빠는 보위부에 가서 조사를 받고 나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끝내 온 양강도 땅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군 문학소조책임자가 반동이라는 소문이 돌더니 문학소조에 다니던 중학생 7명이 일시에 보위부에 끌려갔다.

이제 15살에서 기껏해야 17살 난 중학생들이었다. 문학소조책임자의 집은 아내와 어린 딸까지 모두 밤중에 보위부에서 실어갔다.

그 후 보위부에 끌려간 중학생 가족들은 모두 농촌으로 추방됐다. 중학생들 소식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두 달이라는 동안 정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철식 오빠는 군 보위부에 며칠 드나들었을 뿐 다른 일 없이 무사했다.

필자는 다시는 문학을 하지 말라고 오빠를 말렸다. 오빠도 더는 그런 일에 개입하지 않고 열심히 대학시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그 일이 있은지 넉 달 지난 1993년 11월, 북한에서 지방대의원선거가 진행됐다.

당장 선거를 내일 앞두고 볼 일이 있어 오빠 집에 갔었다. 오빠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와즈(소련제 수인용차)차가 서 있었고 낯선 사람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집안에서 비명소리와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식 오빠가 두명의 보위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입가에 험한 상처가 나있고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손에 수갑은 채우지 않았다. 오빠를 끌고 나오는 보위원들의 뒤에 군 보위부 반탐과장과 다른 어떤 사람이 함께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철식 오빠의 어머니와 형이 달려 나오다가 보위원들에게 제지당했다. 보위원들이 그들을 집안에 강제로 밀어 넣더니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가족들도 홀연히 사라져 버려

필자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너무도 무서워 오빠를 부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오빠는 보위원들에게 끌려 철창이 달린 좁은 차 칸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양강도는 11월 초이면 벌써 하얀 눈으로 뒤덮인다. 하얀 눈가루를 뿌리며 사라지던 자동차와 집안에서 통곡하던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공포에 가슴 졸이다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방금 벌어진 상황을 털어 놨다. 부모님들은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그 집에도 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아침 일찍이 선거에 참가하고 겨우 용기를 내여 오빠의 집을 찾아 갔다.

그런데 오빠네 집은 이미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출입문에 유리창은 깨어져 있고 마당에 판자 조각과 종잇장 같은 것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옆집에 살던 사람들이 어젯밤 갑자기 차가 들이 닥쳐 오빠의 가족들을 모두 실어갔다고 전해줬다. 그 후 삼수군에는 문학소조책임자가 두목이고 강철식 오빠기 부두목으로 반 정부조직을 결성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오빠의 가정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별다른 피해가 오지 않았다.

필자는 지금도 오빠가 그런 조직에 가담했다고 믿지 않는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숭배심이 다른 누구보다 높았고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에 깊이 젖어있던 오빠였다. 그런 오빠가 반동이라는 이름으로 ‘반 간첩투쟁전람관’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당시 그곳을 돌아보던 사람들도 말이 많았다. 그곳에는 안기부와 연결되어 종교를 퍼뜨리려 했다가 처형되었다는 23살 처녀의 사진도 전시돼있었다.

갑산군에서 있었다는 반동분자의 ‘보안서 습격사건’이라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무해 했다.

통일되는 날 북한의 곳곳에 있는 계급교양관, 반 간첩투쟁전람관을 남한사람들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에 가면 남한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사건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철식 오빠가 정치범수용소에 있더라도 이 세상 사람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다.

이혜경(가명)/2005년 국내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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