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남한주민들에게 “당신은 오직 먹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먹나?”고 물으면 “감성을 가진 사람이 무슨 식충이라고 동물처럼 사냐?”며 어이없는 질문을 다한다고 말할 것이다. 인간은 오직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일도 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등 즐기면서 사는 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사람은 살기 위해 먹나? 먹기 위해 사나?”라는 탄식의 말을 수없이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오직 주린 배를 그러안고 먹을 것을 찾아 다녀야만하고 그 먹을 것을 위해서 활동해야만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필자도 탈북하기 전에는 오직 먹을 것을 찾아 몸부림치는 주민들의 삶을 보며 위와 같은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에 입국해서 한국 주민들의 삶을 살펴보며 “인간의 삶은 결코 먹기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며 살기 위해 먹는 주민들과 먹기 위해 사는 주민들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순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반주민들이 있는 반면에 권력을 악용하여 먹을 것만을 찾아다니는 간부들도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들
살기 위해서 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힘없는 일반주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이든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녀도, 어른들이 직장을 다녀도 생각하는 것은 오직 국가에서 배급해 주는 식량뿐이다. 물론 임금도 나오기는 하지만 일반노동자의 월평균임금 2000원을 가지고는 굶주림을 해소할 수 없다. 한국의 언론들은 현재 북한에서 배급제를 폐지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에서 식량을 쌀 1kg 당 8전에서 46원으로 가격을 엄청 올려놓았을 뿐 식량배급제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구역마다 운영되고 있는 식량공급소들에서는 어쩌다가 세대당(한 식구 당) 3~4kg의 식량을 공급해 줄 뿐이다. 평균 4인으로 구성된 북한의 가정들에서 식량 3~4kg을 가지고 보름을 먹고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결국 장마당의 비싼 쌀을 사먹어야 한다. 현재 장마당의 쌀 1kg의 값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750원을 웃돈다. 따라서 장마당의 식량을 사먹자면 한 달 월급을 몽땅 털어도 2.6kg 밖에 살 수 없다. 게다가 일부 기업소들에서는 월급이나 배급조차도 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먹고살란 말인가? 결국 장사를 해서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아야한다. 장사도 상품이 있어야 한다. 상품을 마련하자니 돈이 없어 살 수는 없고 공장에서 도둑질을 해야 한다. 신발공장에서는 신발을,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의류를, 기업소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상품이라면 누가 더 재치 있게 도둑질을 잘하는가에 따라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주민들이 텃밭에서 자체로 생산한 농산물이나 육류들을 장마당에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중국에서 나온 보따리 상인들로부터 싼값에 상품을 넘겨받아 소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마당에 나온 대부분의 상품들은 장물(贓物)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마당 속에서도 보안원(경찰)들과 노동당 또는 김일성 청년동맹 핵심분자들로 조직된 규찰대의 단속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사꾼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단속을 구실로 상품들을 빼앗을 궁리만 한다.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하기가 너무도 어려워,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한탄의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다보니 필자가 탈북하여 중국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한국에서는 건설장에서 하루만 일해도 입쌀 한 마대를 살 수 있는 돈을 번다”고 말하는 조선족 사람의 이야기에 놀랐던 일을 생각을 해본다. 노동의 가치가 북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차이 나기 때문이었다.
먹기 위해 사는 주민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일반주민들의 생활철학이라면, 반대로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당, 행정간부를 비롯한 보위부, 보안원들 등 소위 권력을 쥔 자들이다. 이들이 직권을 이용하여 북한주민들에게 빼앗아 먹는 것은 단지 식량뿐만이 아니다. 공장에서는 생산물을 헐값에 빼내어 장마당에서 고가에 팔아먹고 입당이나 승진을 구실로 뇌물을 먹는 등 형태는 다양하다. 물론 이런 생산품들은 당, 행정간부들 본인들이 직접 파는 것이 아니라 장마당의 장사꾼들에게 넘겨주는 식으로 ‘대거래 장사’를 한다.
지금 북한에서 장마당을 허용했다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또 장마당에 나온 상품구입과정의 출처를 캐면 법에 걸려들지 않을 상품이 거의 없다. 이런 것을 약점으로 보안원, 보위원들이 장사꾼들로부터 마구 뜯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보안원, 보위원들의 행태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큰 간부건, 작은 간부건 권력자들은 하나 같이 ‘하마(河馬)’와 같다고 말한다. 간부들이 입이 큰 하마처럼 덥석 덥석 뇌물을 먹어대기만 한다는 듯이다.
이것이 하급 간부들의 행태라면 김정일 측근의 간부들은 행사파티 때마다 김정일의 하사품을 받아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은 행사파티 때마다 간부들에게 반드시 선물의 명목으로 의류, 술, 담배와 같은 것들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북한주민들도 동물처럼 먹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남한의 주민들처럼 먹고 입고 일도 하고 문화정서적 생활을 즐기는 등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주일 논설위원(2000년 입국, 평남출신) leejuil@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