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지막’ 결전 속으로

인간사회는 점차 발전해간다. 그러나 예외도 존재한다. 현재 수많은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그들 중 무사히 살아남아서 강을 건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강을 건너는 도중 북한군에 의해서 사살되거나, 체력부족으로 익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살아남을 경우가 거의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진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강을 건너서 살아남을 확률이 북한에 남아서 살아남을 확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 오로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의지 하나로 탈북을 감행하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Inside)’은 한 남자의 불안과 분노를 통해서 불안하고 피폐한 삶 속 북한주민들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우거진 수풀 틈 사이로 비춰지는 한 남자의 불안한 눈동자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살벌한 냉기가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그의 눈동자는 강가를 지키는 군인들의 발걸음에 고정돼 있다. 그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곤 2평 남짓한 ‘수풀 집’이 전부다. 신문지와 수풀을 엉성하게 엮어 간신히 몸을 숨기고 있지만, 그의 안전을 보장해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북한군을 바라보는 그의 불안한 시선과 피폐한 삶은 북한주민들의 삶을 연상케 한다. 사회적 안정망조차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수풀 집’보다 못한 처절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남자가 살아가는 이유는 그의 곁에 있는 딸 때문이다. 남자는 흙을 파먹는 딸을 타이르면서도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하는 딸을 안타까워한다. 남자는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강을 건너고 싶어한다. 하지만 군인들에게 살해당하는 탈북 시도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쉽사리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딸의 실수로 ‘수풀 집’이 발각되는 장면에서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딸의 안전을 생각하는 남자와 그들에게 죄의 댓가(?)를 보이기 위한 군인들간의 사투는 최근 중동의 민주화 시위를 연상케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차라리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라는 한 주민의 증언을 담은 인터뷰를 떠올리게 되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의 분노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사회의 이념, 정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오로지 바라는 것은 바로 ‘생존’이다.


그가 딸을 잃은 것처럼 주민들도 삶의 전부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수풀 집’보다 못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영화의 ‘마지막 결전’ 장면과 같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