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여성들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직업 운’을 타고 나온다. 왜냐하면 중학교 졸업 후 6개월 이상 무직(無職)인 자는 법적 제제를 받도록 엄격한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중학교 졸업 여성은 1차 적으로 성분, 권력, 실력(운)에 따라 당당히 또는 간신히 대학문턱을 넘어서는데 그들의 대학 진학 정도는 평양시에서 한 학급(평균 40명)당 20∼40%, 대도시학교에서 10∼25%, 산골 및 농촌 학교에서 1∼3%이다. 그 다음 본인의 희망이나 학교 측의 ‘선발’에 의한 인민군대 입대(평균 약 2∼8%)자를 제외하고 나면 모두가 사회직장에 진출해야 한다. 북한에서 노동직 이라고 해도 출판사나 연구소, 부 위원회, 예술기관 같은 곳에 입직하면 손끝에 기계기름 한 방울 안 묻히고 화이트칼라로 평생 귀족노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빽’이 없는 경우 구역 노동과의 집단배치에 복종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곳에서 하는 배치의 가장 절망적인 점은 본인의 취미나 지향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쁜 얼굴과 보드라운 손, 새로 받은 회색작업복을 먹물처럼 시꺼먼 기계기름에 썩을 듯이 절이며 온종일 기계소음에 청각이 다 망가질 듯한 악조건 속에 꽃 같은 청춘을 파묻어야 한다. 그래도 사무기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다 대학추천 받아 다시 한 번 운명전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공장단위에 한번 들어가면 상급학교에 가도 그 부분과 관련된 쪽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이곳은 선호도가 최저치이므로 국가적 조치에 의해 한번 청장년들을 배정받은 기업소 측은 절대로 자기 ‘먹이’를 놓아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이트칼라 보다 이쪽의 노임이 높은 가? 그렇지도 않다. 화이트칼라 직은 노임이 안정되어 있지만 블루칼라 직은 소위 ‘계획’이란 것을 초과완수 하면 노임이 올라가도 그 계획완수가 제살 깎아먹기이기도 하려니와 80년대 중반부터는 자재부족으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구실이 있어 공장을 빠져 나올 절호의 기회나마 가진다. 하지만 그렇게 나와 보았댔자 별 볼일 없다. 젊어서 배운 기술이란 게 쇠붙이 다룬 경험뿐이니 시집가서 직업을 바꾼다 해도 그 식이 또 장식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직종을 대다수가 다시 택한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요인 위에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부장제적 통념의 이데올로기까지 겹쳐져 여성들은 눈에 띄는 분명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북한은 19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지불할 것에 대한 조항을 새롭게 제정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조치도 북한사회에 유령처럼 배회하는 전통적 가부장제 통념의 벽을 넘지는 못한다. 실례로 북은 모든 업종에 급수제가 존재하는데 3년에 한 번씩 시험을 봐서 이에 통과되는 자의 임금만을 올려주는 장치가 있다. 가부장적 통념은 바로 이 틈새를 공략한다. 즉 통과자를 남성 위주로 하며 높은 급수에 올라갈수록 여성을 배제시킨다. 또한 간부선출의 기회도 남성에게 대부분 부여함으로써 간부에게 해당되는 고임금과 국가적 혜택이 그들 중심으로 차려지게 한다. 육체적 노동을 요하며 사회적으로 비천하게 인식된 분야들에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주로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소외도를 높이고 있다.
주택도 결혼한 남성에게 군(구역) 주택 배정과에서 할당하도록 함으로써 여성이 인간의 원초적 안정을 추구하는 요람을 가질 권리를 상실케 하였다. 각 대학 입학 비율도 여성을 남성에 비해 평균 30% 이하로 한정시켜 여성들의 대학 진학을 제한시킨다. 사무직들에서 1∼2년 간격으로 진행되는 해고 비율을 여성 쪽에 높게 둠으로써 여성들이 불이익을 우선 당하게 한다. 이혼녀, 미혼녀에 대한 사회적 질시와 이혼에 대한 법적 통제는 여성의 피해율을 한층 증가시킨다(2001년 북한을 탈출한 지식인 출신 남성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북한은 이혼을 ‘폭력의 첫째 조건’으로 규정하고 자율화하는 중 이라고 함). 여성이 결혼하면 무조건 남성을 따라가야 한다는 가부장제적 통념과 법적 규제, 남성이 거주한 지역 하에서만 아내도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여성의 다양한 권리를 차단시킨다. 여성을 질시하는 가부장제적 문화는 탁아제도에서도 보이는데 여성들이 신생아보육기간 갖게 되는 2시간당 30분씩의 수유시간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몇 분만 늦어도 그 여성의 해임문제를 들먹이는가 하면 총회나 당 회의에 비판감으로 부각시켜 집단 소외시킨다.
가부장제 문화의 가장 대표적 실례로 김정일의 본거지인 중앙당본부는 여성일꾼을 거의 쓰지 않으며 중앙당 직원 출퇴근 전용 후문은 여성의 접근이 원천 금지되어 있다. 또한 강반석, 김정숙을 여성의 모델로 내세워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나라의 한쪽 수레바퀴를 떠미는 여성’으로써의 국가적 의무에 더해 가사의 과제마저 여성들 어깨 위에 올려놓아 여성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