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김정일 일대기…그 끝은?







▲김정일의 70회 생일을 맞아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되는 백두산 밀영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좌). 11일부터 백두산 기슭에 자리잡은 삼지연군에서 얼음조각축전이 열리고 있다(우하). 10일 평양에서 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기위한 농업근로자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우상). /연합


2월 16일은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정일의 생일이다. 북한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되는 백두산 밀영에서 12일 대규모의 불꽃놀이를 선보였다. 또한 11일부터는 백두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삼지연군에서 얼음조각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밖에도 각 지방당위원회에서는 김정일 생일행사 대책 토의가 진행되고 있고, 각 기업소 공장 별로 경축공연 준비도 한창이다.


북한 당국은 관영 매체를 통해 김정일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3일 관련 기사를 7개나 실었다.


더구나 3대 세습을 공식화한 이후 첫 대규모 행사인 만큼 ‘선군 후계자’, ‘백두산 혈통’ 등의 수식어를 사용하며 후계자 김정은 부각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화려함 뒤에서 북한 2300만 주민들은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다. 국가적 경제난에다 규제와 단속으로 궁핍한 삶에 내몰리고 있는 주민들에게 김정일 생일 경축행사는 커다란 짐일 뿐이다. 생일잔치가 도리어 주민의 불만을 고조시킬 것이란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2월 16일을 맞아 사진을 통해 김정일의 과거를 되짚어본다.








▲생모 김정숙과 함께 있는 김정일의 어린 시절 사진. 김정숙은 1949년 병사한다. /연합








▲김정일과 그의 여동생인 김경희. /연합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김정일의 일대기를 그린 기록영화 ‘누리에 빛나는 선군태양’에 소개된 김정일의 어린 시절 사진./데일리NK


김정일은 1941년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주둔하던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났다. 올해 나이 70세. 하지만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 생일을 1942년으로 바꿨다.


김정일의 어릴 적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인 ‘유라’였다. 사춘기 시절에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급 간부 자제들만 다니는 남산고급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점차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인민학교(평양 제4인민학교, 좌상 시계방향), 중학교(평양 제1중, 54년9월1일), 고등학교(평양남산고급중, 60년7월15일)시절 김정일의 교복입은 모습./연합








▲김일성종합대학 재학 시절의 김정일. /데일리NK








▲김일성과 함께 현지지도를 다니는 젊은 시절의 김정일. /데일리NK


1960년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진학한다. 졸업 후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하면서 정치경험을 쌓는다. 1973년에는 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유력한 후계자로 떠오른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당시의 김정일. /데일리NK








▲1975년 금골광산을 시찰 중인 짧은 머리의 김정일. /데일리NK









▲1980년 열린 6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일이 김일성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서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자리다. /데일리NK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및 친인척들과의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승리, 김정일은 32세의 나이로 당중앙 정치위원에 오르면서 ‘당중앙’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이는 곧 김일성의 후계를 이을 2인자라는 의미였다.


1980년에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군사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공식적인 후계자 행보를 시작한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북한의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한다.









▲1983년 6월 김정일(당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중국을 방문,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중국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일리NK








▲1994년 7월 열병해있는 군대를 향해 박수치는 김정일. /연합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확고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한다. /연합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김정일은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열어 자신의 삼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다. 2010년 10월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일과 김정은. /연합


2008년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당시 언론과 정부는 김정일 건강 이상설을 언급하며 북한 급변사태를 조심스레 전망했다. 현재는 업무에 차질 없는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분석되지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김정일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기억력이 떨어지고 비이성적 얘기를 자주 한다”고 밝혀 김정일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시사했다.


게다가 당뇨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당뇨합병증인 만성 신부전증으로 신장 투석을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열린북한방송은 ‘김정일 호위사령부 산하 특수진료과가 김정일의 건강수명을 최장 3년이라고 결론지었다’고 지난해 7월 전한 바 있다.


더구나 연평도 포격, 일방적 대화공세,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 등 최근 북한의 대외 정책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 한다는 점도 김정일 건강 악화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악화된 것은 김정일의 건강만이 아니다. 김정일의 통치기간 동안 북한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북한의 경제는 점차 악화돼 90년에 중반에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현재도 북한은 외부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최빈국으로 전락한 상태다.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가 지난해 공개한 ‘2010 세계의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780만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과 함께 식량위기국가 22개국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북한은 김정일의 개인금고 역할을 했던 38호실을 부활시키고 지난해 12월부터 해외 공관을 통해 40개국 정부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등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부정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미사일 실험과 여러 차례의 대남도발로 북한은 국제적으로도 고립돼 있다. 여기에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실상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은 점차 강해질 전망이다.









▲11일 30년간 유지하던 권력을 내놓고 퇴진한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1980년 방북한 이후 세차례나 더 북한을 방문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정일과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데일리NK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11일 권력을 군에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30년 독재가 시민들의 힘으로 무너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곤경에 처한 독재자’ 1위와 3위가 각각 무바라크 대통령과 김정일이라는 사실은 김정일의 독재가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게 해준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김정일이 다음 생일상도 받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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