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6.25② “인천에 상륙하라”






▲1950년 9월 15일, 미 해병 제1사단과 미 보병 제7사단이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연합


▶인천에 상륙하라


낙동강 전선에서 위기를 넘긴 국군과 UN군은 반격을 개시했다. 맥아더 UN군 최고사령관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인천에 상륙하여 적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반격부대와 합류한 뒤 적을 일격에 섬멸한다는 작전을 구상했다.


1950년 9월 15일, UN군은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첫 관문인 월미도를 탈환하기 위해 맹폭을 가하였고, 폭격 3시간만인 오전 8시에 월미도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나머지 인천시가지 소탕작전은 국군 해병 제1연대가 담당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이후 국군과 UN군은 총반격과 함께 서울을 향한 힘찬 진격을 시작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국군과 UN군의 서울공격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2개 사단 2만여 명을 동원하여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국군과 UN군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북한군은 서울에서 소탕되었다. 9월 27일, 서울 중앙청에는 다시 태극기가 휘날렸고, 9월 29일 정오에는 수도탈환식이 거행되었다. 이 행사를 통해 맥아더는 수도 서울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계했으며,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진격작전을 전개하는 동안 국군과 UN군의 사망자는 4천여 명 정도였지만, 북한군 전사자는 1만 4천여 명에 이르렀고 전차 50대가 손실되었다. 전쟁의 승기를 잡은 국군과 UN군은 10월 9일, 전면적으로 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북한군은 패전을 거듭하며 북으로 후퇴했고, 국군은 이를 쫓아 압록강 일대까지 북진했다.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자료-6.25전쟁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데일리NK








▲함포사격으로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연합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한국 해병대 ⓒ연합








▲상륙 직전의 한미 해병대 ⓒ연합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맥아더 UN군 최고사령관(가운데) ⓒ위키백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미군들이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연합








▲인천 해안에 상륙하는 한국 해병대 ⓒ위키백과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UN군 ⓒ위키백과








▲인천에 상륙한 UN군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 ⓒ연합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UN군은 본격적인 총반격을 시작했다. 공중투하되는 UN군
 공수부대 ⓒ연합








▲UN군과 한국군이 태극기를 흔들며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국군에 의해 생포되는 북한군 ⓒ연합








▲북한군 전사자를 보면서 진군하는 UN군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