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6.25① “남으로 남으로 낙동강까지”







▲1950년 6월 28일, 북한은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북한군 105전차여단의 뒤를 따라
시가행진으로 서울에 진입하는 북한군 보병부대 ⓒ연합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돼 3년 1개월 2일 동안 전개됐던 6.25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10만 명의 전쟁고아를 만들었다. 그리고 45%에 이르는 공업시설이 파괴돼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2010년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이며,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도발하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서도 안 되지만 잊어서도 안 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전쟁의 시작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야포가 남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북한의 기동부대는 서쪽의 옹진반도로부터 동쪽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유격대 및 육전대는 동해안을 통해 남하했다. 북한군은 서울함락을 목표로 집중적인 공격을 해왔고,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국군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북한의 T-34전차와 자주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속속 무너졌다. 결국 전쟁 발발 3일만인 6월 28일, 서울은 함락되고 말았다.


전쟁 발발과 함께 UN은 ‘북한군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6.25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미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뒤를 이어 16개국이 전투부대를, 5개국이 의료 및 시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도쿄에서 UN군사령부가 창설되었고, 미군 극동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초대 UN군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낙동강에서의 승리









▲북한군의 공격에 국군과 UN군은 개전 35일만에 낙동강전선까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데일리NK


UN군이 참전했지만 전투력의 열세는 여전했다. 북한군은 파상공세로 밀고 내려왔고, 국군과 UN군은 최대한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전투력을 회복하는 지연전을 벌이며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부산까지 점령하여 적화통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북한군과 이를 막으려는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국군과 UN군은 마산-대구-포항선을 사수하는데 성공했고,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꺾어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지 못했다면 한국 정부는 제주도에서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낙동강에서의 승리는 방어 전투에서 공격 전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료-6.25전쟁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데일리NK









▲북한에 주둔한 미군이 노획했던 160만 페이지 분량의 북한 극비문서 가운데 일부. 남침 10일전 포병부대의 전 포탄에 신관을 장착하라는 지령 등이 적혀있다. ⓒ연합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하여 반격에 나섰지만, 병력과 무기 등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과 북쪽으로 향하는 군인 ⓒ연합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위해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장병들 ⓒ연합









▲북한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기차 ⓒ연합









▲북한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 불타는 마을 ⓒ연합









▲남쪽으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가는 피난민 할아버지. 지게에 많은
짐이 실려있다. ⓒ연합









▲전쟁으로 인해 파괴 된 건물 앞에서 홀로 주저앉아 있는 소녀 ⓒ위키백과









▲기차로 몰려드는 피난민 ⓒ연합








▲1951년 1월 8일, 수많은 피난민들이 강릉의 매서운 눈을 뚫고 남으로 향하고 있다. ⓒ위키백과









▲1950년 11월 1일,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위키백과









폐허가 된 서울 시가지에서 사람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위키백과









▲UN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국토의 90%를 빼앗긴 국군으로서는 낙동강이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사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북한군과 UN군 ⓒ연합 









▲왜관-다부동 일대에서는 1950년 8월 3일부터 국군 제1사단과 미군 제1기병사단이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5개 사단의 공격을 45일간이나 방어한 ‘다부동전투’가 치러졌다. 이는 6.25 최대의 전투로 기록될만큼 치열했다. 사진은 파괴된 낙동강 철교를 사이에 두고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아군. ⓒ연합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당한 동료병사를 부축하는 군인들 ⓒ연합









▲치열한 전투에 지친 나머지 탄약박스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군인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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