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北 최고시인 김철의 ‘끝내 이뤄진 사랑’

북한에서 유명한 시(詩) ‘나의 조국’(김상오 작)과 함께 북한 시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어머니’의 주인공 김 철(75) 시인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3일 “김정일 동지께서 김일성상 계관인(계관시인. 뛰어난 공훈을 세워 국가적으로 제정된 가장 영예로운 상을 받은 사람에게 주는 칭호)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인 김철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해 고인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1933년 함경남도 성진(김책시)에서 태어난 김철은 복잡다단한 북한의 현대사에 휩쓸려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아온 시인이다. 그는 해방 전 조선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카프)에서 활동한 박팔양(사망)의 제자로, 해방 전부터 꾸준히 습작활동을 벌여왔다.

6·25 전쟁이 끝난 후 김철은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 문학창작 응모전’에서 ‘더는 쓰지 못한 시’로 1등을 차지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김철은 이때 함께 문단에 등단한 장애인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여성과 문학적 결합을 이룬 김철에게 사회적 관심과 칭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철의 진정한 사랑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1912년 러시아의 ’12월 당원 사건’으로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러시아 장교와 독립군 출신 조선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것. 당시 김철은 작가학원을 1기로 졸업하고 기자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김철은 ‘연애문제’로 사상투쟁회의에 올랐는데, 중앙작가동맹에서 “본처와 이혼하면 노동당에서 제명한다”는 조건을 내놓자 그는 서슴없이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그는 혼혈 여성과 함께 단천지구 광산으로 끌려갔다.

단천에서 21년간 광산 노동을 하는 중에도 김철은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이때의 진실한 생활체험과 평양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들이 인정을 받아 다시 조선중앙작가동맹 시인으로 회복되었으며 조선노동당에 복당했다.

그가 조선노동당에 복당하면서 쓴 시가 바로 조선노동당을 어머니에 비유한 시 ‘어머니’다. 이 시로 김철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국가수훈상과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이 시를 모든 주민들과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외우도록 하고 있다.

김철은 해마다 수십여 편의 시들을 창작했으나 북한 주민들사이에 많이 알려진 것은 ‘어머니’와 ‘용서하시라’이다.

노동당을 찬양하는 많은 시들을 쓴 공로로 그는 1992년 4월 ‘김일성상’을 받았으며 2000년 11월에는 2차 이산가족상봉으로 평양을 방문한 남한의 형 김환을 만나 6·25전쟁 때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을 이룰 수 있었다. 2006년 10월에는 남북한 단일작가 모임인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금강산)에 참석하기도 했다.

시 ‘어머니’는 ‘내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을 거느리고/어느덧 귀밑머리 희어졌건만/ 지금도 아이적 목소리로 때 없이 찾는 어머니/ 어머니가 내게 있어라/ 기쁠 때도 어머니, 슬플 때도 어머니, 반기어도 꾸짖어도 달려가 안기며…’로 전개되며 조선노동당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김정일 정권은 90년대 이후 노동당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갈수록 추락하자, 이 시에 대한 선전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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