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中생존 켈로부대원, 국가책임 없나

중국에 생존해있는 것으로 확인된 북파공작 켈로부대(KLO)원 장근주(77)씨가 끝내 한국에 돌아가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29일 밤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 24일 장씨의 국적취득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 5일만의 일이었다.

장씨는 비록 중국이기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부터 1972년 7.4 공동성명으로 남북이 공작원 파견을 중단키로 합의할 때까지 ‘적진’에서 활동하다 체포됐지만 생존해있던 것으로 확인된 최초의 북파공작원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그간 작전 중 체포된 북파공작원들이 다수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로 생존이 확인된 사례는 중국과 북한을 통틀어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북파공작원 생존자 역시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에 이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인도주의적 과제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파공작원은 그 특수성 때문에 그간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우선 정규군이 아니라 첩보수집과 특수 공작임무를 수행하는 비정규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측 문헌에도 켈로부대원들은 ‘메이리(美李)’로 호칭되며 자신들을 괴롭혔던 실체로 인정받았지만 이런 특수한 성격 때문에 체포되거나 투항했더라도 포로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유엔군 사령관 정전담당 특별고문이었던 이문항(재미교포)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정전협상에서 체포된 켈로부대원에 대한 송환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파공작원들이 특수임무수행자라는 이름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으며 갖은 노력 끝에 2004년에야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 생존해있는 북파공작원들에만 해당하는 얘기였을 뿐 작전 중 실종된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는 없었다.

특히 켈로부대원들은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첩보부대에서 활동했지만 개인병적이 없다는 한미 양쪽의 책임회피로 방치돼왔던 영역이었다.

북파공작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켈로부대원이 미군 예하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지만 부대원 선발을 한국에서 남당하고 운용경비 등을 한국에 줬기 때문에 사후 처리는 한국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한국 역시 관련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관련기록이 없다’는 해명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전쟁시기였다고 하더라도 켈로부대원 선발과 운용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반증에 다름없다는 게 북파공작원 단체들의 입장이다.

켈로부대의 역할이 북한에 첩보수집이 주임무였던 만큼 부대원은 이북 출신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쟁의 와중에서 이북의 피난민을 대상으로 급하게 현지 선발이 이뤄졌다고 해도 한국인 출신 모병관이 있었던 만큼 어떻게 개인기록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게 이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켈로부대의 운용기록은 남아 있어도 부대원 개인기록은 없다는 게 한 국방부 관계자의 해명이었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는 장씨를 켈로부대원으로 인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국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검토해왔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지난 24일 “장씨가 켈로부대에 입대할 당시의 국적은 북한이며 이후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살아와 한국 국적을 가진 적이 었었던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 국적 회복이 아니라 국적 취득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 정부는 이런 해결 원칙에 따라 장씨가 중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북한을 아직까지 우리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과 충돌할뿐더러 북한 주민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했을 경우 이런 헌법 조항에 근거해 한국의 관할권을 주장했던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켈로부대에서 뽑은 부대원들은 지금의 미성년자를 구분하는 연령인 만 20세를 넘기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장씨가 켈로부대에 들어갔을 당시 연령은 19세였고, 장씨와 함께 체포된 동료 공작원 중 1명은 그보다도 두 살이나 어린 17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장씨처럼 유기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고 만약 복역 중 사망하지 않았다면 장씨처럼 석방돼 중국 어딘가에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변변한 훈련도 받지 못하고 작전에 투입됐으며 입대 두달여 만에 모두 체포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결국 장씨는 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지만 켈로부대가 남겨놓은 이런 저런 덫에 걸려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조국에 대한 한(恨)을 간직한 채 이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쳐야 했던 셈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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