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혜원 규원아 살아만…”







▲ 7일 도쿄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 컨퍼런스 ⓒ고영기 기자
“혜원, 규원, 그리고 나의 아내 신숙자. 당신들을 구하기 위한 운동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언젠가 서로 얼싸 안으며 인간 존엄의 승리를 확인할 때까지 오랫동안 살아있어다오.”


1985년 12월 북한 대남공작부서의 유인작전에 포섭돼 입북했다가 1992년에 남한으로 귀환한 오길남 박사는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내와 두 딸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오 박사를 비롯해 북한 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은 7일 도쿄(東京) 지요다구(千代田區) 메이지(明治)대학에서 휴먼라이츠워치(HRW), 프리덤하우스, 국제인권연맹(FIDH) 공동주최로 열린 ‘북한반인도범죄철폐를위한국제연대(ICNK)’ 창립 국제회의에서 북한의 인권침해 실상을 증언했다.


요덕수용소 출신의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는 “수용소에 와플 기계를 갖고 있던 여성이 있었다. 오 박사를 만나 그 얘기를 전해줬더니 자신의 아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수용소에서는 주식으로 옥수수 가루를 먹는데, 신숙자씨가 옥수수가루를 버무려 와플을 만들어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


이날 증언에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 씨의 남편인 찰스 젠킨스 씨도 참가했다. 젠킨스 씨는 2002년 라디오를 듣다가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와 김정일과의 회담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라디오로 몰래 VOA 방송을 듣는데, 김정일이 고이즈미 전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납치를 인정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당시 아내에게 ‘이제 곧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2002년 이후 히토미 씨를 비롯해 일부 납치 피해자는 귀국했지만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편, 이날 북한인권 실상을 증언하기 위한 참석한 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은 “북한이 민주화 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내외신 기자들과 전문가들 ⓒ고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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