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윤경희(사진·가명) 씨가 하는 일은 요양센터에서 재가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다. 윤 씨는 탈북자 봉사단체인 행복봉사회를 통해 여러 가지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어르신을 먼저 찾아 보살피는 일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로 여긴다.
윤 씨는 북한이 고향인 어르신 한 분을 정성껏 보살피고 있다. 이 분은 한국에 가족도 없이 몇 년 전 혼자 입국해 정착을 시작했다. 사회생활도 잠깐 했지만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고, 혼자서 집에서 어렵게 생활해야만 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는 툭하면 짜증에 심통만 부리는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매일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며 술과 담배에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윤 씨는 “그동안 이 분을 보살펴드리던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들 그만두었어요. 그런데 저는 차마 그럴 수 없더라고요. 아무리 힘들게 대해도 같은 사선을 넘어온 동지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보살펴 드렸어요. 그리고 항상 어르신에게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을 드렸죠”라고 회고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던 윤 씨는 근무 시간이 아닐 때에도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하거나 건강이 안 좋아 보이기라도 하면 하루에 몇 번이고 방문했다. 그리고 하루 빨리 마음의 병을 치유하시기를 매일 기도했다. 그렇게 2년 쯤 지난 어느 날, 식사를 하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윤 씨에게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술 잔을 마지막으로 내가 술을 꼭 끊을게”라고 말했단다.
윤 씨는 그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그 동안 부단히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차가웠던 마음을 녹였기 때문이다. 그 후 어르신은 50여 년간 매일 드시던 술도 끊고 그녀의 바람대로 세상을 향해 닫았던 마음의 문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윤 씨는 ‘정성을 다하면 사람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고 좋은 결과도 얻은 셈이다.
자신이 받은 도움은 남을 위해서도 베풀어야 한다
요양보호사 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정착 초기에는 일도 서툴고 일부 어르신들은 낯선 북한 말투를 사용하는 윤 씨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며 전혀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근 후에는 북에 두고 온 외동아들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아파트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10여 년 전 북한에서 살던 무렵 남편을 잃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동아들마저 군대에 보내야만 했다.
한동안 혼자 살던 윤 씨는 한국에 먼저 정착한 아버지와 오빠의 도움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본지 8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하나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오빠와 함께 서둘러 면회를 갔다. 하지만 하나원에서 만난 아들을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작고 까만 사내가 갑자기 “어무이!”라고 부르더란다. 오랜 만에 재회한 모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윤 씨는 “군대를 보낼 때만 해도 평균키 이상이던 아들이었는데, 군대에서 워낙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아들이 많이 변해있더라고요. 정말 많이도 울었죠. 그런 아들이 지금은 건실한 자동차 부품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5년 안에 본인 이름의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이 목표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고 전했다.
윤 씨는 자신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함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언제나 큰 힘이 되고 복지관 관계자와 담당 형사들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한다. 그는 “특히 2009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은 생각도 못하며 살고 있었죠. 그때 서산하나센터 상담사의 도움으로 모 방송국에서 진행한 무료 합동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 막 정착한 아들 역시 김기숙 상담사의 도움으로 지금의 직장을 잡을 수 있게 됐으니 평생의 은인이지요”라고 말했다.
윤 씨는 자신이 받은 도움은 남을 위해서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산석림사회복지관에서 2011년 12월에 모집한 탈북자 봉사단체인 행복봉사회에 가입했다. 지금은 부회장을 맡아서 노인이나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학원에서 아코디언 연주도 배워서 직접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작년 부터는 탈북자 정착도우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입주자 주택 사전 청소활동을 하며 탈북 후배들이 지역 내에 잘 정착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윤 씨의 마음씨에 많은 탈북자들이 그를 따르고 좋아한다. 그런 공을 인정받아서 남북하나재단에서 모범정착도우미 표창을 받기도 했다.
윤 씨는 몸이 건강할 때까지 남을 위해 기쁨을 주고 사랑을 많이 베풀며 사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향나무를 만지면 몸에 향기가 스며든다는 말처럼,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향을 퍼트리는 작은 향나무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런 윤 씨의 모습은 사람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인간다움을 실천함으로써 일과 정착이라는 두 가지 성공을 마련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