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子母우대문화

▲WFP에서 촬영한 함경도의 모녀(母女)

북한에서 자모(애기 엄마)를 특별 대접하는 문화가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열차에 자모 칸이 따로 있었고, 철도 역사에도 자모실이 있었다. 버스정류소에도 자모 줄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모를 위한 국가차원의 제도적 배려만큼 자모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일곱 살 때였다. 언젠가 어른들과 열차여행을 한 했는데, 나를 데리고 가던 친척분은 내가 유아라는 이유로 나의 손목을 잡고 당당히 자모 칸에 올랐다. 나는 이날 북한의 자모대접문화에 대해 평생 의문을 갖게 되는 사건을 목격했는데 사연은 이렇다.

”이곳은 수령님께서 자모를 위해 배려한 칸입니다”

등에는 돌이 갓 지났음직한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큰 짐을 인 여인이 자모 칸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좌석은 이미 다 차 있었다.

여인은 머리위의 짐을 짐칸에 올려놓더니 출입구 옆 좌석에 앉은 60대의 남자 쪽으로 무작정 다가가 섰다. 대뜸 자기에게 자리를 내달라고 했다. 남자는 “내가 먼저 앉아 있었으니, 내자리다”고 대꾸했다.

여인은 “이곳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자모들을 위해 배려해준 칸입니다”고 주장했다. 남자는 “나는 노약자니 이 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그러자 여인은 “노약자는 노약자 칸에 가십쇼!”라며 받아 쳤다.

당황한 남자가 “열차에 노약자 칸이 어디 있냐”며 반발하니, 여인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국가에 제기해서 만들어달라고 하십쇼!”

여인과 남자는 양보할 자세가 아니었다. 여자는 자기 혼자만으로 안 되겠는지 지나가는 열차안내원을 불러들였다. 여자에게 손목을 붙잡혀온 처녀열차원은 남자에게 “손님, 이 칸은 자모들을 위한 칸입니다. 자리를 양보하세요.”라는 공식적인 말만 남긴 채 가버렸다.

수령님 이름을 내걸어도 자리얻기 힘들어

여자는 제힘으로 싸워야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목청을 한층 더 높였다. 둘의 싸움이 거칠어졌다. 자칫하면 주먹이 오갈 것 같았다.

여자는 말끝마다 ‘어버이수령님’을 들먹였고, 말주변이 어눌한 남자는 여자 노는 꼴이 밉살스러워 더 버티겠다며 오기를 부렸다.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의 자리싸움으로 자모칸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방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남자만을 욕하는 뜻은 분명 아니었다. ‘어버이수령님’을 호신용 무기처럼 남용해대는 여자의 행실에 대한 불만의 색채가 더 강했다.

남자는 주위의 여론을 포착하고 위로를 느낀 듯 했다. 하지만 결국 “꿈자리에서 당신 얼굴 볼까 끔찍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짐을 챙겨 나가버렸다.

남자가 비운 자리에 아기를 내려놓고 앉는 여자의 얼굴로 승객들의 암묵적인 힐난의 시선이 쏟아졌다. 여자가 조금은 주눅이 드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열차 좌석을 하나 차지하는 데도 ‘어버이수령님’을 거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녀의 신세가 몹시 측은하게 생각된다.

아이와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로 전락

언제부터인지 북한의 열차에서 자모 칸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오만 무례한 아기엄마라 해도 이제 더 이상 ‘어버이수령님’을 빗댄 행세는 어려워졌다.

평양시내만 하더라도 버스정류소에 자모줄이 따로 있어 아기엄마들이 종종 덕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부터인가 군복 입은 자들의 전유물이 되기 시작하더니 1998년, 내가 평양을 아주 떠날 때는 자모들을 위한 제도들이 완전히 퇴색되었다.

사실 북한의 사회구성원 모두가 비인간적 처지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자모들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기대한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해가는 북한사회에서는 아이과 자모를 보호하는 울타리조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진이 前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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