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스런 北 ‘원칙’으로 한번 다뤄봐라

열차시험운행 취소사태 뒤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4일 제주도에서 첫 대면했다.

이날 12차 경제협력추진위 회의에 참석한 북측은 시범운행 무산과 관련된 사과나 유감표명은 생략한 채 경공업 원자재 등 조속한 대북지원을 요청, 우리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북측이 열차시범 운행 취소를 통보한 다음날인 26일 6월 초 경추위 개최를 요구해오자 정부 내에서는 ‘너무 뻔뻔하고 얼굴이 두껍다’ ‘우리에게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국제적 망신까지 줘놓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고 “이번 회의에서는 경협에 대한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막상 경추위가 시작되자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경추위 남측 대표인 박병원 재경부 제 1차관은 4일 첫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경공업 원자재 지원과 북 지하자원 공동개발, 단천 공동자원개발 특구 지정과 개성공단 협력 요청 등 사실상 경협 재개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 여론이 가장 주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강조해왔다. 열차시범 운행 무산에 따른 악화된 여론을 살피며 경협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일부 당국자들은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고 앞으로 약속이 지켜지도록 북한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계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차관은 기조연설 상당 부분을 경협 논의에 할애하면서 당초의 의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북측은 오히려 시범운행 중단에 대한 책임을 (북측에) 전가하지 말라며 당당하게 대북지원을 요청했다. 일말의 사과와 해명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규모 지원을 위해 북한이 여건을 조성해달라는 등의 경제협력 논의를 슬그머니 꺼내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국민여론을 거론하겠다는 정부 입장과 동떨어진 것이다.

정부는 열차시범운행 무산을 ‘북한 군부의 반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했다.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은 “참여정부 들어 남북협상 관계자들이 북한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김정일이 연출한 ‘남한 벗겨먹기 쇼’ 각본에 따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합의가 무르익으면 또 다시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오는 ‘조건협상전술론’을 전통적으로 즐겨왔다. 열차시험운행도 서해 NLL 재협의 등을 위한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고도 태도는 항상 당당하다. 남북협상을 30년 동안 관계해온 송영대 전 차관은 “북한의 고집스런 자세를 다룰 때는 ‘원칙론’이 최고”라고 말했다.

북측이 남측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도 남한을 비난하고 있는데도 수 천억원에 달하는 쌀과, 비료에 심지어 신발, 비누, 의료 자재 지원을 논의해서는 안된다.

국민혈세로 김정일 인심이나 사보겠다는 자세로는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 정부는 애초 12차 경추위에서 대북지원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가 북한의 분명한 사과와 시험운행 재개 합의 없이는 섣부른 대북지원에 나서는 안될 것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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