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민족해방(NL)계열 학생 운동의 주축이었던 고려대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0월 고려대 총학생회가 전체 학생 중 89.2%의 찬성으로 좌파적 성향의 ’21세기 한국대학생연맹'(이하 한대련)을 탈퇴했다. 학생회의 정치 편향 활동을 탈피하고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 반영하기 위한 행보로 평가됐다.
이와 함께 학교 내 최초의 남북대학생연합 북한인권학회가 출범해 북한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각교정 활동도 벌이고 있다. 이미 이화여대, 경희대, 서울대 등에 결성됐던 북한인권 동아리들이 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활동이 다소 위축된 것과 달리 이들의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띄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학회의 정식 명칭은 ‘고려대학교 남북대학생연합 북한인권학회 LIBERTAS(리베르타스)’다. 고려대의 정신 중 하나이자 라틴어로 ‘자유’를 의미하는 ‘리베르타스’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의 자유를 바라는 학생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이들은 학내 북한인권 문제를 환기시키고 탈북대학생들의 원만한 정착을 돕는다는 목표로 지난해 8월 15일 창립대회를 가지고 공식 출범했다. 최초 7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탈북대학생 4명을 포함해 26명의 학생이 함께하고 있다.
리베르타스는 지난해 9월 말 학내에서 개최한 북한인권 사진전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 세미나와 전문가 강연, 탈북대학생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한 ‘1:1 멘토링’과 남북대학생들이 어우러지는 문화제 ‘북(北)파티’, 교지 발행 등 한 학기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열정적인 이들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다른 대학에서도 리베르타스를 벤치마킹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북한인권모임 PNKHR(Princeton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과도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北인권 외면하고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정영지(법학, 2008년 입학) 리베르타스 학회장은 최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지성인이라면 따뜻한 심장과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의 인권문제와 독재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묵인하는 게 과연 지성인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 학회장은 “고려대 세종캠퍼스에는 북한학과가 있어서 좀 나은 편이지만, 안암 캠퍼스에선 학우들이 북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서 “학우들에게 ‘북한’이라는 두 글자를 던져주고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학회’ 성격으로 활동하는 데 대해 정 회장은 “북한 인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지성인으로서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번 학기에는 매주 세미나를 통해 북한인권법, 독일통일 과정을 비롯해 북한의 실태를 전반적으로 훑었고, 다음 학기에는 좀 더 심화된 내용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대생들은 학회에 대해 ‘신선하다’, ‘생소하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는 ‘빨갱이’, ‘보수단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정 회장은 전했다. 그는 “순수하게 북한 인권을 주장하는데도 기성세대가 씌워놓은 프레임으로 우리 활동을 바라보는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면서 “대학생이라면 인정할 건 인정하고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지금 20대는 북한 정권을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인 파트너라고 보거나 북한의 가난을 체제의 잘못이 아닌 환경적 문제로 생각하는 등 북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적어도 북한 정권은 자기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직시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북한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부족하기에 북한의 현실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 같고, 자신의 삶이 충분히 안락하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북한은 분명 우리 세대에 풀릴 문제인데 좀 더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베르타스의 학회원 이현송(정치외교, 2011년 입학) 학생은 북한에 대한 논의를 꺼리는 대학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하면 정치적으로 치부되거나 색깔론에 부딪혀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면서 “이런 분위기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고, 북한에 대해 공부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탈북 대학생, 통일 가교 역할…당장 학습능력 요구해선 안돼”
정 회장은 탈북자 지원에 무관심한 학교 측에 아쉬운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흔히 ‘민족고대’라고 얘기하는데, 불과 2년 전만 해도 학교에 지원한 탈북학생들에게 토플성적을 요구하는 등 무심한 측면이 많았다”면서 “탈북대학생들은 통일 후 남북의 가교역할을 할 친구들인데 당장의 학습능력만으로 판단하는 건 근시안적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리베르타스는 단순히 주장을 하는 데 멈추지 않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직접 고려대 총장에게 탈북대학생을 위한 정책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재학생이 10여 명에 그치고 있는 탈북대학생의 입학인원 확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탈북 대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위한 대학차원의 멘토링 사업도 제안했다. 노력에 힘입어 올해 탈북자 전형이 개설되는 등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입학전형은 비교적 개선됐지만, 여전히 학교 정책과 커리큘럼은 탈북 대학생들이 따라가기 버겁다. 이에 대해 리베르타스에서 부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지영(정치외교, 2012년 입학) 탈북 대학생은 “지금 우리가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면 후배들이 교육받을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탈북 대학생들은 남한 대학생들과 살아온 환경이 완전히 다른 만큼 도움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