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히 보이는 김정일 조문단 잔수…대한민국 ‘국격’ 보여줘야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북측 조문단이 오늘(21일) 서울에 도착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북한 당국자의 방문은 처음이다.

북한이, 정확하게는 ‘김정일’이 조문단을 보낸 목적은 국민들도 이제 대강 알고 있다. 압축하면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6.15. 10.4 선언, 다시 말해 햇볕정책으로 돌리도록 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키자는, 지난 10여년간 계속 해온 대남 전략전술의 일환이다. 거기에 한미동맹을 이간시키려는 잔꾀가 많이 묻어 있다.

이번 조문단 파견도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부터 시작된 김정일의 대외 유화공세의 연장선에 있다.

김정일은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주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대북적대시 정책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이다. 게다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김명길 공사는 ‘지북(知北)파’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에게 찾아가 미북 양자대화를 요구했다가 허탕을 친 것 같다. 그래도 김정일은 오바마의 바지 가랑이를 계속 붙들려고 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제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런데 괘씸하다. 김정일은 남측에 대해 하나도 태도 변화가 없다. 수(手)가 뻔히 보이는 바둑을 이번에도 두고 있다. 김정일은 현정은 현대회장을 ‘이용’하여 5개항에 합의했다. 김정일은 박왕자씨 사살사건을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6.15, 10.4 선언으로 돌아오도록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민간기업과 한국정부를 갈라치기 하며,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뻔한 잔수를 계속 두고 있는 것이다. 현회장은 기업을 살려야겠다는 심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까지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합의를 하고 돌아온 것 같다.

김정일이 한미를 이간시키려는 모습은 가련하기까지 하다. 조선중앙통신은 현대-아태평화위 공동보도문을 새벽 4시경에 보도했다. 북한의 새벽 4시 경이면, 미국에서는 오전, 오후 시간대, 다시 말해 뉴스 전달과 청취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미국을 의식한 보도임에 거의 틀림없었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 충실하게 행동해오던 오바마 정부는 한국이 북한에 달러를 주는 관광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아마도 ‘이게 무슨 소리냐?’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김정일의 이같은 잔수는 마치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김정일이 잽싸게 김 전대통령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백화원 초대소로 달리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김정일의 그 ‘쇼’는 미국에게 보여주려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민족끼리 이야기한다’는 것을 미국에 프로파간다한 것이다.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방문도 한미 이간이 가장 큰 범주에서의 전략이며, 그 다음이 남남갈등 유발, 이명박 정부 압박 등이 목적이다. 김정일은 그 해묵은 통미봉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통미봉남은 일종의 대남전략전술의 ‘DNA’ 비슷한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같은 전술을 알고 있으면 조문단과 관련하여 한, 두 가지 못박아 두어야 할 게 있다.

첫째, 조문단을 ‘사설 조문단’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공식적 협의나 대화는 할 필요가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조문단을 공식적으로 만나려면 먼저 박왕자씨, 개성공단 유씨 억류 등 정상적 또는 통상적 남북관계를 해친 행위에 대해 사과부터 받고 난 다음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가 비공식적으로라도 만날 필요가 있다면, 김기남이나 김양건 보다 직급이 낮은 정보기관 관계자가 만나는 것이 낫다. 그것은 ‘당신들이 한국에 와있으니 정부가 신변 안전보장은 해주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비인도적 행위에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만약 향후 대북전략을 위해 통일부 장관이 반드시 만나야할 상황이라면, 통일부 장관이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이번 조문단을 ‘사설 조문단’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코너에 몰려 있는 쪽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다.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이 대북 제재를 하고 있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