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옷입고 춤추는 기쁨조, 주민들은 상상도 못해

한국에 입국해 날마다 TV를 통해 보는 한국 젊은이들의 춤과 노래는 냉전 이후 세계화 돼가는 국제무대의 축소판 같다. 미국의 랩과 힙합, 팝핀, 브래이크 댄스 등 갖가지 댄스가 섞여 다문화의 한마당을 이룬다. 노래와 춤 공연은 볼거리가 너무 많아 미처 무엇을 봐야할지 모를 정도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무용분야에서도 아직까지 민족적인 것을 고집하면서 댄스를 비롯한 외국무용을 대중적으로 보급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주민들은 외국인들의 공연이나 외국 영화들을 통해서 서구의 댄스를 보고 흉내를 내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폐쇄적인 북한에서도 일부 무용전문가들과 무용교육기관들, 외사(외국인들과 접촉하며 진행하는)공연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에게만은 댄스를 비롯해 외국무용에 대한 전문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2일 연합뉴스에 북한 여배우들이 비키니와 다름 없는 차림으로 야한 댄스를 하고 있는 동영상이 소개됐다. 이 공연은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다. 특정고위층에만 한정돼 제공되는 공연장면으로 겉으로는 도덕군자인 척하면서 안으로는 선정적인 예술을 선호하는 김정일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호화로운 생활은 이미 그와 함께생활했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한매체들은 날마다 김정일의 소박성과 검박성, 인민성을 떠들면서 그를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민족의 구심점 등으로 떠올리고 있다.

말 그대로 인민들은 호사스런 김정일과 지배집단 아래 경제적 빈곤과 무지속에서 눈 뜬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해마다 북한(9월9일)과 중국의 국경절(10월1일)이 되면 평북 신의주시와 중국 단동시가 공연단을 파견하는 연환모임을 진행한다. 북측에서는 주로 평안북도예술단 배우들과 신의주예술학원 학생들, 본부유치원 어린이들이 참가한다.

외사공연에 참가하는 출연자들은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살고 있는 예술인들과 학생, 어린이들이지만 공연종목 선정과 참가 인원들은 도당 선전부에서 직접 비준(선정)한다. 공연종목은 북중 우호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 부합되는 노래들과 춤들로 구성된다.

북한에서도 이때만큼은 지나치게 북한식 음악이나 민족무용만 고집하지 않고 중국노래들과 중국 무용, 심지어 댄스까지 섞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이런 외사공연들을 위해 예술학원에서는 무용과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댄스교육을 실시한다.

2008년 12월에 입국한 탈북자 김모 씨(50세·여)는 “신의주에 사는 친구의 아들이 어려서부터 춤을 잘 추어 인민학교(소학교) 1학년 때부터 신의주예술학원 무용과에서 무용을 배웠다”며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공연에 많이 참가했었는데 외사공연을 위해 조선무용뿐 아니라 중국전통무용이나 댄스도 배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느 날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학원에서 가르친다는 댄스를 한번 보자고 친구의 아들에게 말했더니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아무데서나 댄스를 추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출 수 없다’고 거절했다”면서 “그러나 엄마 친구들이 딱 한번만 보여 달라고 계속 졸라 그 애는 연 20분간이나 단독으로 디스코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었는데 얼마나 유연하고 멋진지 북조선에도 저렇게 댄스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미처 입도 다물지 못했다”고 추억했다.

한국에서는 다섯 살 난 어린이들까지도 멋지게 할 수 있는, 일반화된 춤이지만 북한에서만은 아무나 함부로 출 수 없다. 이른바 북한의 ‘황색바람’, ‘자유화’를 막기 위한 폐쇄정책 덕분이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댄스는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나 TV에 방영되는 외국영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북한 주민들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통제 때문에 전문적인 댄스교육을 받지 못하지만 대신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척들끼리 모여서 즐기는 장소에서는 음악에 맞춰 정교한 댄스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비슷한 형태의 막춤을 추면서 즐긴다.

1990년 이전만 해도 북한 주민들은 비공식적인 놀이장소들에서 먹고 마시면서 흥이 나면 일어나 조선식 막춤을 추곤 했다. 당시 이들이 즐기던 춤동작들은 대체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막춤동작들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양팔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든가 한 팔은 어깨에 메고 한 팔은 허리 휘감기나 옆으로 들기 등 북한 사람들 속에서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던 것들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스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술마시고 흥이 올라 춤 자리가 마련되면 젊은이들은 디스코를 추면서 흥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김일성 사망 이후 애도분위기가 강제되면서 디스코는 사라지고 말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다시 막춤이 대세가 됐다. 먹고 마시고 나면 누구나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공원이나 강가 등에서 야유회를 열어 먹고 마시고 즐기며 댄스를 추다가 가끔 먼발치로 보안원이나 보위원이 지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지금은 그냥 못 본척 고개를 돌리고 지나쳐 버린다. 인제 더는 ‘디스코’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주민들을 ‘수정주의’, ‘날라리’ 바람 혐의를 씌워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아마도 누군가 그렇게 엉덩이를 흔들며 놀지 말라고 한다면 주민들은 “먹을 것도 없고 돈벌이도 마음놓고 못하는데 춤이라도 맘대로 춰야 할게 아닌가”고 항의할 것이다.

이런 춤 문화는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군인들과 일정한 직급에 있는 간부들 속에도 만연하고 있다. 농촌동원이나 이동 작업을 진행하는 짬에 오락회를 열게 되면 군인들은 저희들끼리 음악에 맞춰 조선식 막춤을 춘다.

상층 간부들도 가까운 사람들끼리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모여앉아 일정하게 술기운이 오르면 한국노래를 부르고 디스크음악에 맞춰 어린 애들까지 일어나 엉덩이를 흔드는 막춤을 추면서 즐긴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가 유행하면서 이를 따라하는 모양새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북한 사회에서도 누구 눈치보지 않고 신나는 춤바람을 일으킬 때가 머지 않아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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