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아내의 `애끓는 思夫曲’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안에 들어와 불을 켤 때가 가장 외롭고 남편 생각이 많이 납니다” 2000년 9월 ‘사상(思想)의 고향’인 북한으로 비전향장기수인 남편 리경구(76)씨를 떠나보낸 김송단(59)씨.

생이별한 남편을 살아서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로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부터 글썽였다.

김씨는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으니 곧 데려가겠다”는 남편의 말에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혼자라도 북한으로 가겠다는 남편을 잡지 않았다.

그러나 5년이 흐른 지금 그에게 돌아온 건 리씨의 생사확인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함과 기약없는 기다림 뿐이다.

“그 때는 6ㆍ15 선언도 있고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곧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ㆍ15 선언 뒤 최근 몇년 사이 남북 간 ‘해빙 무드’가 점차 식어가자 ‘신(新) 이산가족’이 된 김씨는 그리움과 생전에 다시 못볼 수도 있다는 불안이 쌓여 ‘스트레스성 관절염’까지 얻었다.

2년 전 김씨는 한 민간교류행사 때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북한을 방문했지만 남편을 만나지는 못했다.

“작은 기대를 품고 갔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맑은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있는 걸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당시의 아픈 마음을 회상하는 김씨의 눈시울이 또 붉어졌다.

김씨의 남편 리씨는 충남 공주가 고향이지만 중ㆍ고교를 서울에서 다니며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6.25전쟁이 터지자 월북했다.

1952년 남파공작원으로 파견됐으나 그해 강원도 원주에서 잡혀 1989년까지 37년을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했다.

오랜 세월을 사방이 막힌 감옥에서 보내서인지 리씨는 유난히 높은 곳에서 아래를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아파트에 사는 걸 좋아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베란다에 서서 밑에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는 걸 즐기셨어. 왜 함께 있을 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구경도 좀 더 많이 가지 않았나 후회가 되지요” 외동딸이 출가한 뒤 혼자 지내는 게 부쩍 더 힘들어졌다는 김씨는 “한 평도 안 되는 감방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남편과 같은 비전향장기수의 삶에 비교하면 참을 만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달랬다.

얼마 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된 뒤로 며칠 밤 잠을 설쳤다는 김씨는 마지막 소원을 담담히 털어놨다.

“하루 빨리 남편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 뿐이지. 힘들 때면 남편이 장기수 시절 아무리 고문을 당해 힘들어도 ‘그 날이 꼭 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던 걸 되새기며 참아내고 있어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비전향장기수 전원송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며 같은 해 9월 리경규 씨를 비롯한 63명이 북으로 갔고 일곱 가족이 김씨처럼 남편ㆍ아버지와 생이별을 겪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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