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진스키 인터뷰] “이라크 상황, 올해도 부시 대외정책 좌우”

국제전략문제 전문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05년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이라크 상황의 전개 양상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미국이 이라크전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바꾸든지 미군을 압도적 수준으로 늘리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의 테러리즘은 항복문서를 받듯이 종식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북한의 핵 개발이 계속되면 일본이 핵무장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은 지금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나는 위기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세계적 안정의 궁극적 담보자로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전능하지 않고 세계의 독재자도 아니다. 미국의 신뢰성이 낮아졌고 고립화가 더 광범위하다는 것에도 의문이 없다. 이것이 미국의 지도력 행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부시 2기 행정부는 그런 점을 고려해 외교정책 방향을 바꿀 것인가?

“한 마디로 이라크 상황의 전개에 달려 있다. 나는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이 2004년에서 크게 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기존 정책을 계속하도록 위임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울 것 같은 이라크 상황은 부시로 하여금 정책을 바꾸도록 요구할 것이다.”

―이라크전에 앞장섰던 소위 ‘네오콘’들의 영향력은 2기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인가?

“그들은 부시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이라크전에 돌입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그들의 시각은 극단적인 경향이 있고, 중동과 특히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분쟁 경험에서 유래된 측면이 있다. 그들의 영향력 지속 여부도 역시 이라크 상황에 크게 달려 있다. 이라크전은 미국 외교정책의 진정한 시험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4년간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한다면?

“부정적 측면으로는 무엇보다 이라크전이고 그에 대한 매우 잘못된 정당화 이다. 지나친 군사력 강조, 국제문제에서의 일방주의 등도 문제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북한과 이란에서의 핵확산을 방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이다. 러시아와의 안정적 관계 유지, 적극적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 추진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미 감정도 그런 일방적 외교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보나?

“반미 감정의 동기들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일부는 미국의 힘에 대한 분노의 산물이며,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국제문제들에 대해 일방적이고 독단적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는 생각에서도 비롯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미국인들은 지난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선택했을까?

“미국인들의 세계를 보는 시각은 다른 나라 국민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인들이 안전(security)과 불안전(insecurity)의 문제에 다른 정서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은 세계적 안보문제들에 대한 개입 수준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스웨덴은 세계적 안보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안보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힘과 부를 갖고 세계적 안보문제에 개입하는 나라의 시각은 그런 책임이나 부담을 갖지 않는 나라들의 시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러나 국제사회와의 협력, 특히 동맹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도 그렇게 보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미국은 더 많은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압도적이고 최고의 위상을 가지려면 협력자를 가져야 한다. 좋은 사례가 북한 핵문제다. 북한 핵문제는 군사적 공격이 아니라면 미국 혼자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에서조차 명확해졌다.”

―한·미 간의 동맹관계도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약화된 것은 미국 쪽이라기보다는 한국 쪽이다. 미국에서는 양국 동맹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의심하는 시각은 많이 볼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동맹은 양측의 국민여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한쪽 국민 여론이 동맹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 동맹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의 유지는 한국인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미국의 최대 국가 과제인 테러와의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것 또한 이라크 상황에 상당히 달려 있다. 이라크전이 정당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거기엔 대량살상무기도 없었고, 이라크 군대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은 단지 3개의 사단으로 3주 만에 전 이라크군을 이겼다. 이라크는 위협이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는 점령을 잘못 관리해 사담 후세인이 무너질 때보다 더 많은 적을 만들고 말았다. 후세인 제거는 옳았으나 그것을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미국은 이라크전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가?

“그 전쟁이 추구하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규모를 재검토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을 받아들여 신정(神政)체제나 그나마 덜 불안정한 이라크로 목표들을 바꾸거나, 이라크 주둔 미군과 전비(戰費)를 대폭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현재의 목표와 수단으로서는 생명력 있는 이라크 정책을 바랄 수 없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존의 다자적 방식이 기본적으로는 옳다고 본다. 핵심은 북한에 핵 개발을 지속하는 비용이 너무나 높은 반면 그 타협의 대가는 매우 유익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다른 국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테러 공격에 사용할 의도를 가진 비밀스운 조직에 넘기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심각한 위험이다. 만일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가시적인 중지나 현저한 속도 감소가 없다면 일본에 대한 핵무기 보유 압력이 증가될 것이다.”

브래진스카는 폴란드에서 태어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Brzezinski)는 카터 행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 저서 등으로 잘 알려진 국제전략문제 전문가다.
미국을 전대미문의 권력을 가진 ‘제국(Empire)’이라고 기꺼이 부르는 그는 다만 현대의 세계는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상호의존적 사회로 규정한다. 76세의 나이에도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고문, 존스 홉킨스대 교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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