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와병 1년> 불안정한 3대 세습

지난 1월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운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상 초유의 예비 3대세습이 탄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월8일 삼남 김정운의 25회 생일에 노동당 조직지도부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운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했음을 극비리에 통보한 것이다.

이는 단계적으로 노동당과 북한군의 중상부에도 전달했고, 지난 5월말 제2차 핵실험 직후에는 노동당과 북한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과 해외공관에도 통보돼 내부적으로 사실상 공식화됐다.

김 위원장이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자 후계체제 구축은 당장 체제존망을 좌우하는 급선무가 된 것이다.

와병 전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은 레임덕 우려와 세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후계문제를 외면했었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와병은 그의 사후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에 절감시켰다.

수십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로 이어지는 강력한 1인 독재체제에 길들여져 있는 체제의 특성상 구심점인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와병은 권력투쟁과 사회혼란, 나아가 체제붕괴 우려까지 낳는 사안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서둘러 작년 말 김 위원장의 삼남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할 것을 건의하는 절차를 밟았고, 정운은 후계 내정 통보 이전인 작년 12월께부터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면서 본격적인 후계자 업적쌓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이 아픈 몸을 이끌고 와병 이전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군부대와 경제시설을 시찰하며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후계 기반을 다지기 위한 다급한 행보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운의 업적쌓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선군정치’와 ‘미국과의 대결전’.

지난 4월 대북 정책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우방인 중국을 자극하며 인공위성 ‘광명성 2호’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을 `무모하게’ 단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방북한 것을 북한은 김정운의 “탁월한 외교 업적”, “대미 결전의 승리”로 선전하고 그를 “탁월한 전략가”로 찬양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44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 평양시 10만 가구 건설 등 올해 들어 북한에서 추진되고 있는 모든 정책과 성과도 김정운의 치적으로 포장되고 있다.

김정운을 ‘대장(계급이 아닌 우두머리 의미)’으로 부르고 그를 찬양하는 가요 ‘발걸음’도 만들어 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보급해 이 노래는 공식 석상에서도 불리고 있다.

정치적 야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운 본인도 고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과 5.1절을 맞아 ‘축포야회’를 잇달아 벌였고, 김 위원장이 1974년 후계자로 추대된 직후 경제부문 업적쌓기 차원에서 벌였던 ’70일전투’를 본뜬 ‘150일전투’를 기획,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후계체제 구축의 전면에는 그의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성택 부장과 그가 주축이 된 국방위원회가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김정운 후계’체제 구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했고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장성택 부장을 포함해 노동당과 군, 공안기구의 핵심 인물들을 망라한 국방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정운은 이 회의가 열리기 며칠전 국방위의 지도원이라는 말단 직책을 부여받았다.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의 와병 직후부터 현재도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을 대신해 사실상 국정 전반을 장악 운영하면서 김정운 후계 구축을 견인하고 있다. 김정운이 아직 어리고 정치경력과 경험이 전무해 후계자로서의 업적 만들기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운의 공식 후계자 등극을 2년 뒤 또는 이른바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로 목표를 세운 2012년께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정운 후계 체제의 정착 여부는 북한의 내외 여건상 그리 밝지 않아 보이며 가장 핵심 변수는 김 위원장의 수명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만약 김 위원장이 정운의 공식 등극 이전에 사망한다면 김정운 후계체제는 물위로 떠오르기도 전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 사후에도 현재 권력을 장악한 장성택 부장이 정운의 후계체제를 계속 추진한다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지만, 장 부장이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아예 후계자에서 밀어내고 국방위원회라는 기구를 내세워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장 부장이 김 위원장 수준의 권력 기반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야심을 가진 군부 인물이 장 부장과 김정운 모두에게 총을 겨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를 제외하고는 15년간 공개 석상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장 부장의 부인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 최근 김 위원장의 시찰에 부지런히 동행하는 것도 아직은 군부의 파워에 힘이 딸리는 장 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설사 김정운이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화된 후라도 김 위원장이 얼마 못가 사망한다면 ‘속성’으로 구축된 후계체제이기 때문에 김정운의 인지도와 권력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배엘리트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