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능화 전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할까?

▲ 2일 ARF에서 행사장에서 지나치는 박의춘 외무상(좌) 美 힐 국무부 차관보 ⓒ연합

북한이 이번 달 내로 재개될 6자회담 실무그룹 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를 재차 요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차 필리핀 마닐라에 방문 중인 북한의 박의춘 외무상은 2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다음 단계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요구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외무상이 지적한 적대시 정책은 미국이 북한에 적용하고 있는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 교역금지법’ 등이다. 영변 핵시설 폐쇄라는 초기단계 조치 이후 2단계 조치인 핵 불능화에 앞서 미국의 대북 제재 정책들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13합의에는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 북한의 2단계 행동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치가 명확히 제시되진 않았다.

대신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북한이 핵 불능화 단계에 돌입할 경우 중유 95만 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만 약속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와 관련 “비핵화를 한다면 모든 게 가능하지만, 그것 없이는 가능할 게 별로 없다”고 강조하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은 북한의 완전한 핵페기 이후 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케이시 부대변인은 지난달 31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 법률상의 관련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전반적인 시기 문제는 협상가들이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었다.

그는 또 리비아의 사례를 지적하며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 법률에 따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북한의 경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전 미 국무부 관리는 최근 한 아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과 경제제재 명단에서 삭제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며 “이 두가지 작업이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일정에 맞춰 완료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2·13합의의 극적인 타결이 ‘BDA 동결자금 해제와 영변 핵시설 폐쇄’ 카드를 맞바꾼 미북 양자간 ‘베를린 회담’의 수확이듯이 불능화 단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미북간 모종의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은 주고 받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2단계 행동에 상응하는 조치로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공식 발표하진 않았지만) 미국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나 적성국교역법 폐지 등을 염두해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연내 불능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2단계 불능화 행동까지는 나설지라도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미국도 이러한 북한의 의중을 알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쉽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시간 지연을 위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며 “그러나 (북한의 북핵 폐기 의지와 상관없이) 2단계 불능화 조치까지는 북한도 이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불능화 조치가 연말까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박의춘 외무상을 수행중인 정성일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1개월이나 2개월이 아닌 장기적인 조치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 연내에 이행해야 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다”며 북핵 폐기까지 협상을 끌며 최대한 많은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느긋한 입장을 보였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에게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라고 계속 요구해왔다. 그 요구 내용도 상황마다 다르다. 위조달러 제조를 중단하라는 요구에도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으로 몰아붙인 적이 있다. 따라서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 요구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군사동맹 파기가 될 때까지 계속 들고 나올 구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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