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한 정부를 ‘파쇼독재’ ‘사대매국 보수정권’으로 지칭하고, 경색된 남북관계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씌우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계속 촉구했다.
북한은 김정일의 신년사인 공동사설에서 “6·15 통일시대와 더불어 활력 있게 전진하던 조국통일운동은 지난해 남조선보수당국의 집권으로 엄중한 도전에 부딪치게 되였다”며 “우리는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에서 탈선하는 그 어떤 요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는 올해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길로 힘차게 전진하자’는 구호 밑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활성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해, 대남정책에서 두 선언의 先이행을 촉구했던 지난해 태도에서 변화가 없음을 확인했다.
북한은 지난해 공동사설에선 남한 정부에 대한 직간접적인 표현을 자제한 채 두 선언의 이행에 대한 기대만 나타냈다.
그러나 올해 공동사설은 비록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북남대결에 미쳐 날뛰는 남조선 집권세력의 무분별한 책동” 등 거친 표현들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남한 정부를 ‘파쇼 독재’ ‘사대매국 보수정권’으로 지칭, 비난했다.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남한 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 표현을 사용한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엔 없던 일이어서 이명박 정부와의 ‘힘겨루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북한이 공동사설을 통해 현 남북관계에 대한 ‘이명박 정권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공세적 입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당분간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 역시 남북관계의 ‘새판짜기’를 염두에 두고 장기적 관점에서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대화를 촉구하는 유연함을 강조하고 있어 당분간 현재의 긴장국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1일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어설프게 시작해 돌이키기 힘들게 만드는 것보다는, 어렵지만 제대로 시작해 튼튼한 남북관계를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원칙’을 고수할 것임을 밝혔다.
북한은 또한 공동사설에서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남한 내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
공동사설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자면 자기 민족을 우선시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관점부터 바로 가져야 한다”며 “숭미사대주의와 동족에 대한 적대의식에 사로잡힌 반통일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남조선 인민들은 자주, 민주, 통일의 구호를 들고 사대매국적인 보수당국의 파쇼통치를 쓸어버리며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한다”고 구체적인 투쟁방향까지 제시했다.
공동사설은 특히 군사분야를 다룬 대목에서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사회주의 제도를 건드리는 자들에 대한 인민군대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주장해 남한 정부의 대북 인권문제 제기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등에 대해 단호한 대처를 예견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 없고, 두 선언에 대한 이행 촉구 이외의 주목할 만한 주장이 없는 것에 비춰볼 때 현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려는 의도는 엿보이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촉구했던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한 것으로 볼 때 대남관계를 현재보다 악화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즉흥적인 대결을 암시하는 표현이 없는 만큼 협력할 수 있는 여지도 남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남한 정부를 ‘파쇼’ ‘사대매국’ 정권으로 비난하고 남한 내부의 투쟁 방향도 제시했지만 대화 모색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도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 돌리는 것”이라며 “결국 이명박 정부가 두 선언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하도록 몰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