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70년대 전반기 무력통일 기도”

1960∼70년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치열한 국력경쟁을 벌이던 우리 정부는 베트남전때 당시 최규하(崔圭夏) 외무장관을 내세워 참전국들을 상대로 치열한 반북외교를 펼친 사실이 2일 드러났다.

이번에 국방부가 공개한 베트남전 관련 문서에는 최규하 외무부 장관(1967∼1971년 외무부 장관 역임)이 1969년과 1970년 열린 참전 7개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연설한 내용이 담긴 두 건의 연설문이 포함됐다.

이 연설문을 보면 우리 정부가 1960년대 베트남 파병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연례 정상회담을 갖는 등 외교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기회를 십분 활용, 국제사회에서 ‘북한 때리기’에 적극 나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 장관은 1969년 5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3차 참전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나는 월남이 공산침략의 유일한 장소가 아님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킨 바 있다”며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납치 ▲제주도 무장공비 상륙 시도 ▲울진.삼척 게릴라 침투 등 북측의 도발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1953년 맺은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도발행위를 다반사로 되풀이 했다. 1953년 이래 휴전협정의 위반건수는 1969년 3월31일 현재 무려 6천723건에 달하고 있다”며 북한을 성토했다.

최 장관은 또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행위는 한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발전을 방해하기 위한 발악적 술책일 뿐 아니라 전쟁준비를 위한 과도한 지출과 소위 ‘7개년 경제계획’의 실패에 기인한 북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어 1970년 7월 사이공 제4차 파병국 외무장관회의에서 그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침략행위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고 전쟁준비를 은폐하기 위해 ‘북으로부터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터무니 없는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최 장관은 또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통일에 관한 협상은 소위 민주주의적 진보세력이 남한 정권을 장악한 후에만 개최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며 “그들은 박정희의 대통령 지도하에 한국이 지속하고 있는 고도의 경제성장에 대해 크게 놀라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대한민국 관계 당국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한국에 대한 전면적 침략을 언제라도 감행할 수 있는 준비를 이미 완료했음이 분명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북괴는 만일 한국이 수년간 현재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면 공산화의 꿈을 실현시킬 가능성이 없어짐을 알고 있다. 고로 북괴는 더 늦기 전에 무력통일을 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그들은 1970년대 전반기에 (통일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며 시기까지 적시했다.

최 장관은 또 “일본 경찰당국에 따르면 북괴 정권은 남한에 대한 세균전 수행을 위해 1969년 한 일본 상사에 콜레라 및 기타 전염병균을 북으로 선적토록 은밀히 발주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우리 정부의 ‘노력’에 부응해 여타 참전국 외무장관들도 공동성명의 일부분을 할애해가며 동조의 뜻을 표했다.

참전국들은 1970년 파병국 외무장관 회의 공동성명서에서 “북괴가 추구하고 있는 호전적 정책을 주시한다. 그러한 행위는 중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북괴가) 한반도 및 그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한다는 종래의 합의를 재천명했다”고 명시했다.

참전국들은 이어 1969년 12월 북한이 한국의 YS-11 항공기를 납치하고 탑승자를 억류한 사건과 관련해 “승무원과 승객을 즉각 그들의 가정으로 돌려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우리는 북괴의 침략행위에 대항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