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학교 붕괴’는 수령노예교육 와해로 이어져야

대북지원단체 ‘(사)좋은벗들’은 최근 발행한 소식지에서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기능공학교와 고등전문학교에서 식량이 떨어져, 학교 식당은 문을 닫고, 기숙사생들은 열흘이 넘도록 쌀 한 톨 먹지 못하고 있다는 전했다.

만약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계속되는 와중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남측의 대북식량 차관 40만톤이 7월부터 들어가기 시작했고, 수해로 인해 막대한 식량 지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정작 북한 청소년들이 쫄졸 굶고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식지에 따르면 각급 학교와 탁아소의 교장과 선생들까지 나서서 식량을 구해야 할 만큼 학교 사정이 열악하다고 한다. 원산에서는 취학연령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서 얼음과자나 채소장소, 화물운반작업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느라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함경도에는 수업을 중단한 학교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전반적인 것인지, 일부 학생이나 지역에 제한된 것인지 아직 파악하기 어렵지만 지원식량의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볼 때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소식지는 개인이 사용하는 필기구나 책가방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교의 청소용구와 책걸상, 교사들이 사용하는 분필까지도 학생들이 부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학교 운영 재정을 대부분 학생들에게 부담하게 했다. 운영비와 연료비, 모형 탱크 제작비까지 걷고 있다. 이러한 돈을 내지 못하면 눈치가 보여 학교도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상의료가 허울만 남았듯이 무상교육도 이름만 남은 셈이다.

친구들과 뛰어 놀며 꿈을 키워야 할 어린이들이 밥벌이를 위해 장마당으로 내몰리고 있다. 거리에는 꽃제비들이 구걸 수준을 넘어 범죄집단화 하는 현상도 감지된다. 평안북도 동림군 현지 주민에 따르면 아이 셋 중 하나는 돈이 없어 학교를 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학교 붕괴’ 현상이라 할 만하다.

가난은 하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북한은 예외다. 이 빈곤과 학교 붕괴의 책임은 북한 주민이 아닌 김정일에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김정일 독재정권의 반인간적 통치와 무능이 빚어낸 비극일 것이다.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붕괴’ 현상은 곧, 북한식 무상교육제도의 붕괴를 의미한다. 김정일 정권이 자랑해온 ‘무상교육’이란 무엇인가? 북한 교육의 본질은 어린이들을 김정일의 총폭탄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수단에 불과했다.

젊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의 창조성을 짓밟고 수령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는가? 결국 이러한 교육이 현재의 북한 사회를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붕괴는 역설적으로 김정일 우상화 교육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수령의 노예와 도구로 만들어온 사상주입시스템, 다시 말해 ‘수령노예교육제도’가 파탄 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수령노예교육제도’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정일 정권이 그것을 지탱할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추세를 잘 관찰해야 한다. 북한 어린이들이 굶거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현상은 막아야 하지만, 당국의 학교와 주민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는 것은 적극 지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당국의 배급에 의지하지 않고 장마당이나 개인경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는데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김정일 정권을 배부르게 해 주민과 학교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존권을 보장하고 김정일 정권보다 국제사회에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의 교육시스템이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부모들의 장마당 등 개인경제 활동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체험하면서 북한 우상화 교육의 허구성을 깨우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분별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김정일 정권과의 정부간 지원 보다는 개별 학교와 학생에 대한 지원도 검토해 볼 때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뛰어넘는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대북 지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