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폐연료봉 인출…6자회담 `어디로’

모스크바 연쇄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화 국면이열릴 듯한 조짐을 보이던 가운데 11일 북한의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간 협의에 일단은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2.10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은 3.31 핵군축회담 제안, 지난달 초 원자로 가동중단 등의 절차를 북한이 밟아온 점으로 미뤄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취하기 위한 사전단계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는 원자로 가동중단→원자로 냉각→연료봉 인출→수조내 냉각기간을 거친다.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통상적인 수조내 냉각기간인 3개월 후인 오는 8월부터는 재처리가 가능해진다.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의지는 이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5㎿ 원자로에서 8천여개의 폐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을 성과적으로 끝냈다면서 “방위적 목적에서 핵무기고를 늘이는데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해가겠다”고 주장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앞서 지난 달 19일 한성렬 주유엔 북한 차석대사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영변 원자로의 가동 중단 사실을 확인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일단 외교통상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하는 상황악화 조치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경고’를 하고 나섰지만, 내심으로는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 중국 등도 그다지 놀라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달초 가동 중단이 확인됐을 당시 폐연료봉 인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8∼9일 모스크바 한.미.일.중.러 5개국 정상간 다각적인 연쇄회동 에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재확인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던 상황에서 북한의 ‘사용후 연료봉 인출 완료’라는 악재가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6자회담 개최 논의에 어느 정도 차질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협상력 높이기’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재처리 수순을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위협의 수위를 높여 주변국의 진을 뺀 뒤 6자회담 장(場)에서 몸값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직후 영변 원자로 재가동 카드를 던져 상황을 악화시켰고 그 이후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극비방북을 통한 삼지연 담판으로 북핵 위기를 북-중-미 3자회담이라는 협상국면으로 바꾼 바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북한의 ‘사용후 연료봉 인출완료’ 발표에 그다지 동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표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달 18일 “북한이 원자로를 가동하든 않든 연료봉을 재처리하든 않든 북한이 처한 난국의 해법을 북한측에 안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날 발표를 계기로 현재의 북핵국면이 더 악화될 지, 오히려 극단적인국면으로 진입을 우려한 나머지 북-미 양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이 대화의 국면으로의 극적인 전환을 모색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협상력 높이기’가 아닌 ‘핵보유국 수순 밟기’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촉구에도 불구,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6자회담 보다 더 나은 협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핵무장 수순을 진행시켜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용후 연료봉의 인출 완료 발표가 추후 재처리를 위한 것이며 북한이 핵무기고를 늘이는 조치를 밟아가고 있다는 주장이 ‘허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10일 핵무기 보유선언과 3.31 핵군축회담 제안으로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과시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지하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도 지난 7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 인터넷판을 통해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에 걸맞은 조선의 행동계획은 이미 책정돼 있다”며 은근히 핵실험 강행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수순밟기에 착수했다면 후속 6자회담 개최는 극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공식화를 위한 6자회담에 한.미.일.중.러가 참여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북핵 문제 해결의 수단도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법이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한 해결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은 ‘다른 수단’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중.러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유엔 안보리 회부를 통한 대북 제재 쪽으로 몰고 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 재처리 수순에 돌입해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한다면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은 지난 달 20일 “영변 원자로 가동중단이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려는 의도라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대북 제재의 대열에서 우리 정부가 이탈하기 어려울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으로도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 모스크바 연쇄 정상회동에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기조를 재확인한 만큼, 일단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관련국들간의 후속 협의들은 예정대로 진행될 뿐더러,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11∼12일 워싱턴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현 국면의 타개방안 등을 조율하는데 이어, 힐 차관보가 13일 서울을 다시 찾아 송 차관보와 재회동을 가진다.

이어 송 차관보와 힐 차관보는 18∼19일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열리는 ‘아세안 PMC’ 고위관리회의에 참석해 중ㆍ일ㆍ러 등 3개국과 각각 연쇄회동을 갖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8일 모스크바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이후 실무적인 대북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특히 유형의 제재는 아니더라도 무형의 제재를 통해 대북 압박을 할 가능성도 비치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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