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원자로 ‘가동 중단’ 의미와 전망

매달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약 750g을 만들 수 있는 영변 5MW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이 55개월만에 가동중단돼 폐쇄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북한 핵문제가 전기(轉機)를 맞게 됐다.

미국 국무부는 현지시간 14일 숀 매코맥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오늘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다(shut down)는 통보를 받았다”며 “우리는 이 같은 진전을 환영하고 북한에 도착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팀에 의해 검증과 감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폐쇄’조치의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이 적어도 폐쇄를 위해 이날 가동중단에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기술적으로 보면 가동중단이다”면서 “하지만 가동중단은 2.13합의에 나온 폐쇄를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폐쇄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이번 통보는 2.13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공급 1차분 6천200t을 실은 선박이 14일 오전 북한 선봉항에 도착, 오후 9시께 하역을 완료한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 북.미 제네바기본합의(1994)가 깨지고 2002년 12월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한 지 약 4년7개월만에 다시 핵시설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원자로 가동중단 의미는 = 2.13합의에 명시된 초기조치는 영변.태천의 5개 핵시설 폐쇄 및 봉인과 폐쇄 상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다.

이들 조치의 본질은 핵무기 제조설비인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공장 등의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무기급 플루토늄의 추가 생산을 막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날 핵시설 가동중단으로 초기조치는 절반 이상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10kg(추정) 언저리에서 묶었지만 2002년 말 합의가 깨지면서 영변 핵시설 스위치가 다시 올라간 이후 현재까지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양은 핵무기 6~7개를 만들 수 있는 50kg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차례의 핵실험에 플루토늄 5kg 이상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보유 플루토늄의 반 이상이 소진될 2002년 말과 이미 한 차례 핵실험을 하고도 핵무기 5~6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을 보유한 2007년 7월 사이 북핵 위기지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이날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의 가동이 중단됨으로써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잠정적이나마 막게 된데 따른 실질적 및 상징적 효과는 작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회담 참가국들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관련 조치를 보면서 신뢰 축적의 계기를 만드는 한편 다음 단계인 핵프로그램 전면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로 가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또 연기가 나오지 않는 영변 핵시설 굴뚝을 잡은 위성사진을 보면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미국 등 일각에서 일었던 대북 협상 회의론도 다소 수그러들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날 이뤄진 핵시설 가동중단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누구도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한.미 등은 가동중단 상태를 최소화한 뒤 연내 ‘불능화 종료’까지 나간다는 목표지만 뜻대로 될지 여부는 향후 6자회담 논의 결과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 향후 일정과 전망 =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12일 서울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핵시설 폐쇄 등 초기단계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낙관하지만 문제는 초기단계 이후 2단계 조치”라고 말했다.

그의 전망처럼 이미 로드맵과 시기가 짜여진 초기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날 오후 평양을 거쳐 영변에 도착한 IAEA 감시검증단 10명의 입회하에 약 2~3주면 핵시설 폐쇄.봉인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날 북 선봉항에 도착한 중유 6천200t을 시작으로 다음 달 1일이면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에 대한 상응조치인 중유 5만t 제공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미 IAEA와 북한 간에 폐쇄.봉인 및 그에 대한 감시절차에 합의가 이뤄진 만큼 초기단계 이행과정에서 북한과 IAEA, 또는 북한과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견해다.

난관은 오는 18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하는 6자 수석대표 회담을 시작으로 논의되는 핵 프로그램 신고 및 불능화 단계에서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가 지난 달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등 과정을 포괄적으로 풀어가는데 뜻을 모았고 대북 협상에 대한 워싱턴의 지지도 여전하기에 주변환경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신고 및 불능화 협의 과정에서 현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HEU 진상규명 문제, 핵시설 불능화의 수위와 경수로 제공 시기를 둘러싼 공방 가능성 등 난제는 곳곳에 놓여 있다고 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6자가 이 단계를 돌파, 연내 불능화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을 이룬다면 내년 중 돌이키기 힘든 수준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에 도달한다는 참가국들의 목표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반대로 이 단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충돌한다면 이날 이룬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의 유지 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북핵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모색하는 현재 협상틀의 유효기간은 부시 행정부 임기인 내년말까지일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대체적 예상이고 보면 북한 최고위층이 조기에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 여부가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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