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식량해결, 역시 개혁 ∙ 개방뿐이다

▲ 농토를 고르고 있는 황해도 농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권태진 선임연구위원은 최근호에 기고한 ‘북한의 농정 변화와 식량수급 변화’라는 제목의 분석자료에서 “북한이 식량생산을 증대하려면 농업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식량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를 개선해야 하지만 비료 등 영농 물자의 공급과 함께 농업기술개발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증산을 위해서는, 농업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농업기술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농업정책, 즉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농업부문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기술개발을 하려고 해도 농업정책과 제도가 장애물이다.

‘주체농법’이 농업기술개발 가로막아

북한의 농업부문 경영체계는 내각에 농업성, 각 도마다 농촌경리위원회, 시 군마다 농촌경영위원회를 두고 리 단위의 협동농장에 대한 종합적인 지도를 실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협동농장은 국가계획에 준하여 움직인다.

그런데 농업현장에 내려가보면 경영 및 기술일꾼들과 당간부들의 갈등, 농장원들의 생산의욕 저하 등 제기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당간부들은 노동당의 ‘주체농법’을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면서 과학자, 기술자들의 창조적 연구 활동을 방해한다. 당의 농업정책과 상반된 입장을 취하려는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이런 조건 속에서 창조적인 기술개발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주체농법은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 원칙에서 생산할 농작물을 배치하고 집약적인 밀식(密植) 포기농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50여 년 동안 이런 식으로 농사를 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경작지는 80~90%가 산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토양의 산성화를 막기 위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데도 노동당은 오늘까지도 과학자, 기술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주체농법대로만 농사를 하라고 요구한다. 수령이 창시한 ‘주체농법’에 흠집이 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농작물의 육종체계 역시 각도마다 원종장(原種場), 시군에 종난장(種卵場)을 두고 1대 잡종 농산물 종자를 육성해 내고 있지만, 육종 농장에 대한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아 책임성과 창조적 적극성이 결여되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증산에서 절실한 문제는 단순히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개선을 할 수 있을 만한 농업정책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자력갱생’ 강조하다 선진기술 도입 놓쳐

농업정책을 개혁하는 것과 함께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발전된 외국 기술을 받아들일라 치면 ‘자력갱생의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스스로 연구개발할 것을 강조하여 기술력이 한참 뒤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1990년대 초 김정일은 중앙당 39호실 산하 지방 5호관리부에 ‘달팽이를 사육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지시했다.

달팽이가 외화벌이 품목으로 지정된 것은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체르노빌 지역 인근에는 유럽국가에서 인기 있는 달팽이 요리의 원료인 달팽이 농장이 많았는데, 폭발사건 이후 방사성 물질이 검출돼 수출이 중지되자 국제시장의 달팽이 가격이 톤당 2000달러까지 뛰어 올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평안남도 증산군 5호관리부를 중심으로 달팽이 사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달팽이 사육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의 달팽이 양식장을 시찰할 것을 중앙에 제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불가’였다. 외국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우리의 기술로 달팽이 사육을 연구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1년 동안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달팽이 사육을 연구하여 그 이듬해에 생산체계에 들어 가게 됐는데, 이미 그때 국제시장에서 달팽이 가격은 한참 떨어져 원가도 건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결국 달팽이 생산은 중지되었다.

만약 과학자, 기술자들의 요구대로 외국의 선진 사육기술을 받아들여 곧바로 생산을 추진하였더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실례는 농업뿐 아니라 다방면에 수없이 많다.

북한은 농업분야의 식량증산을 위해서, 그리고 공업부문의 기술혁신을 위해서도 다른 나라의 선진기술을 창조적으로 도입해 나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시대에 뒤떨어진 ‘주체농법’과 ‘자력갱생’ 노선을 속히 폐기해야 한다.

북한이 살아나갈 방도는 개혁과 개방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주일 논설위원 (평남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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