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부시 친서 ‘적대정책 전환 증명서’로 평가할 듯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북한 국방위원장 앞 친서에 대해, 북한은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직접대화의 시작, 문서를 통한 대화상대 공식 인정 등 다양한 의미를 읽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요구해온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전환’을 문서로 공식화했다는 의미를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열린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담에서 미국측에 북미간 신뢰구축과 관계정상화를 위해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매체들은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정책의 전환을 가시적으로 입증할 것을 주장해왔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 ’피그미’, ’버릇없이 구는 아이’ 등으로 지칭했던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보낸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변화된 대북 태도를 실감케 하기 충분하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평양순안공항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배웅한 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미국측은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도 만족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조선신보가 “이번 (힐 차관보의) 방문기간 조선(북)측은 힐 차관보 일행을 각별히 대우했다”고 소개한 것도 북한이 이번 친서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북측은 부시 대통령 친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북한의 주장과 미국측의 태도로 미뤄 친서에는 조속한 비핵화를 촉구하고 그에 상응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재확인하며, 불가침 의지와 비핵화시 관계정상화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내용이라면, 부시 대통령의 친서는 북한이 그동안 미국에 요구해온 대통령 서명이 든 문서 등을 통한 확실한 ’보장’으로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의 친서는 북미 양측 최고지도자간 직접 대화의 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 친서를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에 속도가 붙는다면 앞으로 ’2007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된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의 현실화 여건이 조성돼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단계 비핵화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 친서가 갖는 무게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에 대한 답신을 힐 차관보를 통해 전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힐 차관보가 사흘이나 북한을 방문했으니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상호주의에 따라 부시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을 것”이라고 단언하다시피 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 신고와 관련된 부분을 조속히 이행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남북 정상선언 내용을 존중하고 미국도 함께 할 용의가 있다는 의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힐 차관보가 방북 이튿날인 4일 박의춘 외무상을 만난 자리가 아닌, 북한을 떠난 날인 5일 박 외무상을 다시 만나 친서를 전달한 것은, 회담 카드로 활용하면서 북한과 회담 분위기를 원활히 하고 나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통해 담판을 시도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 등의 신고 문제가 부각된 후 비관적 기조로 변환 조짐이던 비핵화 기류가 다시 구비를 트는 분위기다.

최고지도자간 교신을 통해 신뢰가 쌓인 만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한 북한 정치시스템의 특성상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북미관계의 전례를 보더라도, 북미 정상간 친서교환은 양국관계의 냉각기보다는 화해분위기가 고조되는 국면에서 이뤄졌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처음이지만,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0월과 1999년 5월, 2000년 10월 등 세 차례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었다.

1994년에는 제네바 합의 체결 이후 경수로 발전소의 건설과 중유 공급에 필요한 자금 조성 및 이행을 확약하는 담보서한을, 1999년에는 방북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을 통해 핵무기와 미사일 포기시 광범위한 경제지원 의사를 담은 친서를, 2000년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통해 북한과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친서를 각각 전달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0년 10월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친서를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보냈다.

특히 1994년을 비롯해 1999년과 2000년은 모두 요동치던 북미관계가 개선되던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도 새로운 북미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미 최고지도자간 친서가 오간다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미간 갈등이 풀려나가는 맥락 속에서 한번 더 문제 해결 의지를 확인하는 새로운 계기라는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은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치적으로 치켜세워지면서 주민들의 충성을 동원하는 소재로도 적극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클린턴 대통령의 서한에 대해, 북한은 내부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굴복한 것으로 선전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의 담보서한 때와 달리, 북한은 이번엔 친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내부정치에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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