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맥아더, 6.25때 원폭 30여발 투하 요구”

6.25전쟁 당시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총사령관에 임명되자마자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고 그후에도 30여발의 원자탄을 투하하면 10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또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한 뒤에도 원자폭탄 사용을 여러 차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입수된 북한의 `통일신보'(1.22)는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지난해 12월 프랑스의 `몽드 디플로마티크’지에 기고한 글 `북조선에서의 전화(戰禍)에 대한 회상’을 인용해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이는 맥아더 사령관이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을 계기로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고 맥아더 사령관 해임의 주요 사유가 핵무기 사용을 둘러싼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라는 그간의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커밍스 교수의 글은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15일 일차 보도한 데 이어 이번에 통일신보가 다시 소개했다.

다음은 북한 언론매체가 전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전쟁이 개시된 지 2주일밖에 안 된 1950년 7월 7일(편집자 주;맥아더가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날) 맥아더는 리지웨이 당시 미육군 참모차장(사망한 워커 미8군사령관 후임으로 1950년 12월말 한국전선에 도착)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참모본부는 이 긴급 메시지를 놓고 맥아더에게 원자탄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연구했다.

작전국장 찰스 볼트에게 맥아더와 `육군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원자탄을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토의할 책임이 부과됐다.

볼트는 적어도 10-20개의 원자탄을 한국전을 위해 비축해야 한다고 했으며 맥아더는 그에게 전쟁에서 급한 경우 원자무기의 전략적 사용을 시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원자탄을 사용하겠다고 천명했다.

같은 날 전략항공대에 극동에 즉시에 원자탄 투하를 위해 폭격기들을 날려 보낼 수 있도록 지시가 하달됐으며 미국은 그당시 450개의 원자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해 12월 9일 맥아더는 한국전에서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는 독자적 권한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 놓았으며 12월 24일에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26개의 원자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맥아더는 그후 여러 회견에서 10일 동안에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작전계획을 갖고 있고 “30여개의 원자탄을 투하하려 한다”,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다”고 했다.

1951년 4월 초에 맥아더는 원자탄을 다시 사용하려고 했다. 원자탄과 관련된 동원령이 하달되고 앞서 3월말에는 일본의 가네다와 오키나와의 핵무기 저장고에서 핵무기 적재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보고됐다. 원자폭탄들은 그곳에 부분품으로 운반돼 조립됐고 핵탄두만 결합시키면 됐다.

그 때 트루먼이 맥아더를 호출했다. 그것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제거하고 원자탄 정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핵무기 사용 계획은 1953년 정전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반복 검토됐다. 미국이 한 이 `미치광이짓’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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