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납치 오리발에 엔진 달아준 美 테러보고서

▲지난해 열린 납북자 송환없는 北테러지원국 해제 반대 집회

미국은 지난달 3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차 지명한 ‘2006 테러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명한 이유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들었다.

여기까지 보면 미국은 북한의 납치 행위를 테러로 인식하고 이를 매우 심각한 사태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 납북자 문제를 누락시켰다. 일본인에 대한 납치행위만 문제삼은 것이다.

북한이 한국인 납치를 인정하고 전원 송환한 것도 아닌데 보고서에서 누락 시킨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제와서 보니 한국인에 대한 납치행위는 테러가 아니라는 말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2·13합의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치적 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한국인 납북자 문제를 삭제함과 동시에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축약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미국이 2∙13합의 이후 유화적인 대북정책으로 전환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보고서 축소라는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러나 동맹국인 일본의 납북자 문제 포함 요구는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납치 문제가 들어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미국 입장에서 미북관계와 미일, 한미 관계를 테러보고서에서 적당히 녹여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테러보고서는 2·13합의의 훈풍을 맞아 심각하게 변질돼 버렸다.

미국이 2005년 테러보고서에서 한국인 납북자 485명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일본인 납치 행위 자체는 과거형이지만 한국인에 대한 납치행위는 2000년 김동식 목사 이후 진경숙 사건, 강건 사건 등 알려진 것만도 수십건이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의 형평성 문제를 넘어서 납치문제 전반을 왜곡하고 있다.

1970년대 북한은 대남첩보활동 펼칠 간첩을 교육시키기 위해 일본인과 한국인을 조직적으로 납치해간 것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대해 향후 오리발식 태도를 더욱 고착시킬 소지가 충분한 이번 보고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인 해석을 넘어서 원칙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원칙을 훼손한 경우 북한의 태도 변화는 더욱 요원해진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고 인권신장을 약속했다는 밀약이라도 체결했다면 모를까 현재 국면은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번 보고서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우리는 일본 정부처럼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는 커녕 비핵화의 장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게 한국인 납치문제를 제외시켜달라는 요구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보고서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에 납치돼 있는 납북자들과 한국의 가족들이다. 신혼여행 중에 북중국경 근처에 납치된 진경숙 씨는 이미 신변에 큰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정부가 요지부동의 북한 정권과 핵 거래를 하는 이 시간 납치자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북한 정권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