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남북정상회담보다 북미관계 우선”

북한이 “북미간 정식 수교 이전에 외교적 일단계로 연락사무소 개설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북한의 유엔 대표부 김명길 공사(사진)는 베이징을 출발하기 전 12일 이창주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13일 이 의장에 따르면, “북한은 연락사무소 문제에 부정적이고 곧바로 미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발언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공사는 “힐 차관보가 지난 5,6일 뉴욕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이후 밝힌 것과는 달리 우리는 정식외교관계 수립을 요구한 적이 없고 조미간 외교관계 진전을 희망했을 뿐”이라며 “정식수교는 절차나 방법상 쉽게 성사되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어 우선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원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만약 이런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했다면 외교적 절차를 밟아 미국과 국교수립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북미간 수교 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 北, 美 BDA조치 신뢰회복이 선회 배경 = 북한이 연락사무소 단계를 거치기로 한 것은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 ‘성의’를 보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미국이 18개월동안 끌어온 BDA 조사를 마무리짓고 마카오 당국과 중국 금융당국에 위임한 것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신뢰회복에 돌파구가 열렸다는 얘기다.

실제 김 공사도 “미국이 BDA 자금동결 문제를 마카오와 중국 당국으로 넘긴 것을 약속 이행으로 간주하고 신뢰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공사는 특히 “전체 자금 동결 해제가 전제된다면 단계적 해제도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BDA에 동결된 2천400만달러가 다 풀리는게 최상책이겠지만 그 중 일부만 해제되더라도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북한은 또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이번 뉴욕을 방문했을 때 미국측이 경호에 만전을 기하고 의전에 최대한의 예를 갖춘 것 등을 북한에 대한 예우로 평가한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김 공사는 “김 부상의 방미가 부시 대통령을 만날 목적은 아니었지만 지난 2000년 조명록 차수 의 방미때에 준하는 예우를 해줬다”고 평가했다.

◇ 北, 북미 관계정상화 1차목표 = 김 공사는 “현재 공화국의 우선 과제는 조미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적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북)·미 관계가 시급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북·남 정상회담보다는 (미측의) ‘외교방문’이 우선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BDA 자금 동결 해제를 비롯, 2.13 베이징 핵타결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고, 미국의 전향적이고 우호적인 대북 외교 접근법을 감안할 때 많은 시간과 난관이 우려되는 북미간 정식 수교보다 정상적 외교적 절차를 밟아나가는게 북미관계 개선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과거 적대국과 수교할 때는 연락사무소부터 개설한게 관례였다.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이듬해 베이징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됐다.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79년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지난 1994년 10월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도 북미가 각각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그 뒤 대사급 관계로 격상한다고 명시했었다.

◇ 라이스 방북 수순밟기 나섰나 = 김 공사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한은 금년 상반기에 미 외교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김 공사가 “부시 행정부의 라이스-힐 라인에 대해 완전하진 않지만 신뢰감을 갖고 있다”고 밝힌 대목은 힐 차관보나 라이스 장관의 방북을 희망한다는 의사표현에 다름아니다. 실제 BDA 문제가 정리되는대로 힐 차관보에 이어 라이스 장관이 방북하는 ‘로드맵’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만약 라이스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그 시기는 2.13 합의사항인 1단계 북핵폐기 이행조치에 대한 평가이후 2단계 합의가 이뤄지는 4∼5월쯤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 공사는 “김 부상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라이스 장관의 방북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北, 先미국관리 방북, 後남북정상회담 검토 입장 = 라이스 장관이 방북하면 연락사무소 개설과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회담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이 상임의장의 주장이다.

아울러 라이스 방북이 성공적일 경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 문제도 본격 거론될 공산이 크다고 이 의장은 전망했다.

다만 김 공사는 “조미(북미) 관계가 시급하게 진행되고 있고, 상방이 성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북남 정상회담보다는 미국의 외교방문이 우선될 것”이라고 강조, 미 고위관리의 방북후 남북정상회담이 검토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후문이다.

◇ 北美정상회담 본격 추진되나 = 라이스의 방북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2009년 1월내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자회담 2.13 합의에서 북핵 해법의 가닥이 잡혔고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북간의 관계정상화 논의가 무르익으면서 북미 또는 남북미 정상간 회동도 배제할 수 없는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하노이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때 한국전 종료선언 가능성을 언급한 사실을 들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까지 합류하는 남북미중(南北美中) 4자회담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전망도 없지 않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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