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先 BDA 해결’ 집착할수록 6자회담 꼬인다

13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5차 북핵 6자회담 이틀째인 오늘(19일) 2차 전체회의에서도 미북간 현격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BDA(방코델타아시아) 실무회의가 이날 오후 베이징(北京) 주재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시작됐다.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내세워 핵 군축회담을 주장하자 미국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는 이제 덜 인내하고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양측의 대립이 한층 격해진 가운데 BDA 실무회의가 출발했다.

실무회의에선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하는 북·미 BDA 실무대표단은 BDA내 북한계좌 동결자금 2천400만 달러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현재까지 미국과의 양자회동을 거부하면서 오 총재를 수석대표로 하는 BDA 실무회의에 총력을 기울인 후, 협의 결과에 따라 향후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실무회의에는 북측이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 대신 금융전문가인 오 총재를 내세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북측이 BDA 문제를 정치적 문제가 아닌 실무적 문제로 접근해 미국측 주장을 조목조목 따져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전날 김계관 부상이 밝혔듯이 금융제재가 풀려야 본격적인 핵 관련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측의 글레이저 부차관보에 맞서 북한도 외교관이 아닌 금융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워 BDA 계좌의 합법성을 강조하고, 정치적 공방보다는 금융제재 해제의 당위성을 주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함께 리근 6자 차석대표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BDA 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하는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 3월 뉴욕회동 당시 리근 국장은 “(정부 차원에서)위폐제조를 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미국이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면 제조자를 붙잡고 종이·잉크 등을 압수한 뒤 미 재무부에 통보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리 국장은 위폐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 비상설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미국은 실무회의에서 뉴욕 회동 때 언급했던 아시아-태평양 자금세탁방지기구(APG) 가입을 다시 한번 권고할 가능성이 있지만, BDA 내 합법 자금에 대한 동결 해제 가능성을 언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현지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한편 미국은 북한과 달리 6자회담과 BDA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다루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북한이 BDA문제를 연계시킬 경우 이를 제어할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미국은 위조 달러 제조는 다른 해명이 필요 없는 범죄일 뿐이며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는 미 국내법에 따른 당연한 법집행일 뿐이라는 입장에 아직까지 변화가 없다. 힐 차관보는 “비핵화 때 모든 것이 가능하나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어 미국의 선 금융제재 해제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BDA 실무회의가 미북간에 이견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끝날 경우 6자회담도 진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데 대체적인 의견이 모아진다.

북한이 겉으로는 BDA와 6자회담을 연계해 놓고 속으론 ‘투 트랙’ 전략 아래 두 이슈를 별개로 논의하면서 원하는 바를 최대한 얻어 내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베이징 회동에서 북측에 제안한 ‘북핵 폐기 초기 이행방안’을 수용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선 모든 6자회담 참가국들이 희망하고 있지만, 정작 북측이 미국의 우선적인 금융제재 해제 없이 핵 폐기 조치와 그에 따른 보상 조치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