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난의 행군’ 때 비육우 생산 시작

북한이 비육우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불과 10년도 안된다. 그것도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 때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입수된 북한 월간지 ’조선녀성’ 11월호는 “우리 나라에서 소고기(쇠고기) 생산의 공업화 역사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시작됐다”며 그 배경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 간부들에게 “평탄한 풀판이 적어 소 방목이 불리한 우리나라에서 소고기를 큰 품(노력)을 들이지 않고 생산하는 길은 과학적이고 공업적인 방법에 의거하는 것”이라며 비육우 생산을 본격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비육우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소라고 하면 단지 농사일을 위한 부림소에 머물렀고 식료품으로서의 쇠고기도 농사일 등에 사용할 수 없는 부림소가 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민들에게 고기를 많이 먹여야 한다”며 비육우 목장 건설 부지를 직접 정해주고 목장 건설을 군부대에 위임했으며 건설에 필요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1년도 안 된 1997년 현대적 비육우 생산 시설을 갖춘 송암명기소목장이 완공됐다.

같은해 10월 이 목장을 둘러본 김 위원장은 “방목을 하지 않고도 공업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을 표시하면서 앞으로 모든 도와 시.군에 이 같은 비육우 생산시설과 우유 전문 생산 목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아울러 과학연구사업을 심화시켜 비육우를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는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후 이 목장에서 생산된 소는 각지에 공급되기 시작했고 ’대황소상 민족씨름경기’에도 등장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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