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2막1장’ 열리나

4년 넘게 전개돼온 제2차 북핵 사태가 근본적인 국면전환의 기로에 선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13개월의 공백기를 깨고 지난달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5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미국측이 `크게 주고받는’ 이른바 패키지안을 북한에 제시한 뒤 잠시 호흡을 고른 북한과 미국이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모종의 합의’를 도출해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6자회담의 핵심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베를린 협의 내용을 바탕으로 차기 6자회담에서 `크게 주고 크게 받는 협상’을 하기로 한 것 같다는 게 외교가의 관전 결과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를 두고 차기 6자회담이 개최되면 ‘3막짜리 드라마’ 가운데 `2막 1장’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로 1막은 끝이 났으며 이제 새로운 막이 열린다는 뜻이다.

그는 또 `2막 1장’은 말뿐만이 아니라 초기단계조치 이행을 합의하고 이행일정을 구체화한 뒤 이행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북핵 드라마’를 막전막후에서 깊이 간여해온 송 장관의 이 발언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외교가는 받아들이고 있다.

송 장관에 앞서 현 상황을 미리 알린 사람도 있다. 지난 9~13일 북한을 방문했던 일본 자민당의 야마사키 다쿠(山岐拓) 전 부총재는 “차기 6자회담에서 두드러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오는 3월께 일정한 합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대사 등과 회담했던 야마사키 전 부총재의 전언은 ‘평양의 흐름’을 제법 구체적으로 전해준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곧 워싱턴과 평양 수뇌부간 1차 교감이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6자회담에서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패키지안을 북측에 제시하면서 ‘워싱턴 수뇌부의 뜻’임을 분명히 했다.

미측은 영변 5MW 원자로 동결-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허용-핵 프로그램 신고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진 초기단계 이행 조치를 수용할 경우 ▲문서화된 안전 보장 및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삭제▲식량 및 경제지원 ▲국교 정상화 협의 착수 등의 호혜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패키지딜’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것들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뜻임을 강조해가며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이 제안을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에 `핵 없이 사는 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미국은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관련, 미국의 제안을 100% 수용해야 보상조치가 가능하다는 식이 아니라 북한이 어느 정도를 수용하느냐에 따라 보상조치가 달라진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협상장에 나왔던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은 ‘평양에 돌아가 검토해보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힐 차관보에게 만날 것을 제안, 베를린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의 손가방에는 ‘평양 수뇌부의 1차 답변’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이 보내온 답변들이 “확실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차기 회담에서 “우리가 추구해온 구체적 진전들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일정한 합의’를 강조하는 북한 외무성이나 발걸음 가볍게 모스크바를 거쳐 베이징에 들어온 김계관 부상의 표정을 보면 북한측도 ‘통큰 협상’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곧 재개될 ‘방코델타아시아(BDA) 실무회의’나 다음달초의 6자회담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가진 중요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이럴 경우 야마사키 전 부총재가 언급한 ‘꽃피는 3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슨 일들이 펼쳐질까.

송 장관이 말한대로 말뿐이 아니라 핵폐기를 위한 초기단계조치 이행에 합의한다면 북핵 사태, 나아가 한반도 지평은 큰 틀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변의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고 IAEA 사찰단이 다시 북한땅으로 들어가며 주요 핵시설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는 등 핵폐기 이행을 위한 기초행위를 위한 작업이 부산하게 북한 땅에서 펼쳐질 것이다.

그 사이에 베이징이든 뉴욕이든, 아니면 한국의 서울이나 제주도에서는 `북한에 대한 침공의사가 없으며 북한과의 궁극적인 수교를 의미하는 관계정상화를 시도하는’ 작업들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불가침 의사나 체제안전을 담보하는 외교문서를 북측에 전달하고 1953년의 종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평화포럼’이 구성돼 숨가쁘게 가동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언급한 바 있는 `종전협정에 남.북.미 정상이 함께 서명하는’ 이른바 3자 정상회담의 성사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전망이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인 한반도에서 이런 일들이 펼쳐진다면 궁극적인 북핵 사태의 해결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반도에는 물론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까지 변수는 많다. 힐 차관보가 언급한 대로 ‘몇가지 이슈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지만 ‘합의하지 못한 이슈들’에서 북미가 다시 충돌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불신의 골이 깊은 북미 양측이 예기치 않은 신경전으로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확산되는 국면이다. 그리고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북핵사태의 큰 변화가 올 것인지, 북한은 과연 `통 큰 결단’을 내릴 것인지, 바야흐로 ‘한반도의 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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