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3년… 어디까지 왔나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진 지 오늘로 꼭 3년을 맞지만 아직 완전한 해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9월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큰 가닥을 잡았다는 사실은 다행스런 대목이다.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로 해결된 것으로 보였던 북한의 핵문제가 재발한 것은 미국 국무부가 2002년 10월17일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고농축우라늄 (HEU) 핵개발을 시인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

HEU 프로그램 시인에 대한 북.미 간의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북한은 핵문제를 본격적인 카드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위기지수를 높여갔다.

북한은 2002년 12월 제네바 합의에 따른 핵동결을 해제한 데 이어 2003년 1월 정부성명을 통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으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같은 해 2월 북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 결의안을 채택하자 미국 내에서는 안보리 회부를 통한 대북제재 실시주장이 힘을 얻었다.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2003년 4월 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거쳐 다자틀 속에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첫 회담을 시작으로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미 양측의 절충점 없는 입장 대립 속에서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2004년 6월 3차 회담 이후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의 영향을 받으며 장기공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고 북한은 올해 2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데 이어 5월에는 영변 5㎿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 개의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7 면담에서 전력 200만㎾ 직접송전을 골자로 하는 중대제안을 설명하면서 교착상태의 6자회담이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북한과 미국이 뉴욕채널을 재가동하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7.9접촉을 거쳐 제4차 6자회담이 문을 열었다.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4차 6자회담은 한 차례 휴회를 거쳐 9월19일 북한의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 포기, 미국의 대북 불침공 등을 골자로 하는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지루한 줄다리기를 거듭하던 북핵문제는 해결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섰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회담 참가국들의 목표점과 지향을 담은 대원칙 선언문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눈에 띄는 대립점은 북.미 간에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대북 경수로 제공문제이다.

북한은 경수로 제공이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만큼 선(先) 경수로 제공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고 NPT 등 국제적 체제 복귀가 이뤄지면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앞으로 9.19공동성명의 이행합의서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면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6자회담의 안정성과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는 북.미간의 불신은 근본적으로 풀어야할 문제이다.

양측의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대화를 통해 현재의 신뢰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고 이런 측면에서 힐 차관보의 방북이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미국은 신보수주의 외교정책이 지향하는 도덕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실리추구의 현실주의 외교로 돌아와야 하며 북한 역시 부시 2기 행정부의 변화를 파고들어 실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외교라인을 활용한 대미 설득과 남북 간 대화채널을 이용한 대북설득은 한국 정부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몫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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