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회담으론 해결 어렵다

을유(乙酉)년은 핵문제에 있어 실망과 희망이 교차했던 한 해였다. 2005년 2월 북한은 ‘핵보유’ 성명을 발표하여 세계를 긴장시켰고, 세계 언론들이 ‘핵실험 가능성’을 타전하자 한국인들은 버섯구름의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그러다가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이 북한의 핵포기 원칙을 담은 공동발표문을 내놓자 성급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후속타는 없다.

아직도 6자회담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건너야 할 계곡은 깊다. 구속력과 포괄성을 갖춘 합의문을 협상하는 과정은 지루한 험로가 되기 쉽다. 전망도 불투명하다. 상호불신 속에 미국과 북한은 ‘선 핵포기’ 요구와 ‘선 적대정책 폐기’ 주장을 주고받고 있다.

대미 경계심과 대북 보호본능을 품은 중국은 대화는 열심히 주선하지만 결코 북한에게 핵포기를 압박하지는 않는 이중적 자세를 고수한다. 북한의 위폐 유통 혐의에 대해서도 알만한 중국이지만 침묵한다. 오기(傲氣)와 호기(浩氣)를 구분하지 않는 북한의 경직성도 아직 불변이다.

북 체제 언급, ‘용의 역린’인가?

이런 모습은 지난해 12월 상해 푸단대(復旦大)가 6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개최한 모의 6자회담에서도 재현되었다. 북한 대표들은 줄기차게 미국의 핵위협을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주민의 삶을 우선시하는 체제로 변화한다면 미국이 적대정책을 펼 이유도 북한이 핵을 가질 필요도 없지 않느냐”라는 필자의 질문에는 침묵했다.

중국인들도 ‘미국 책임론’에 동조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기만하고 탈퇴한 북한이 먼저 신뢰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당연한 지적마저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정서였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중국과 북한의 대표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권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고 합창했다. 이렇듯 물고 물리는 주장들이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게 있어 체제 문제가 아무도 건드려서 안 되는 ‘용(龍)의 역린(逆鱗)’으로 남아있는 한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핵문제든 인권 문제든 그 출발점은 ‘체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딜레마는 또 있다. 무한정 대화를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02년 10월 미국이 농축 문제를 시비하자 북한은 NPT에서 탈퇴하고 1994년 제네바핵합의로 동결했던 핵시설들을 재가동했다. 현재 북한은 회담에 나가서 협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플루토늄과 핵폭탄을 생산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회담결렬 등 최악 사태에서 ‘수령의 사상과 영도의 절대성’을 지켜내는 길일 것이다.

워싱턴-베이징 축이 회담 최대 변수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혼선이 많았다. 미국은 농축 문제를 제기한 이후 험구(險口)들만 쏟아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북한에게 핵동결을 해제하여 더 많은 플루토늄이나 핵무기를 만들 계기와 시간만 제공한 꼴이다. 미국인들의 대북 판단력은 아직도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숙맥(菽麥) 수준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회담이 시간만 끌다가 좌초한다면 한국은 훨씬 더 많아진 북핵과 마주해야 한다. 핵무기도 붕어빵과 마찬가지로 첫 제품이 나온 이후에는 생산속도가 빨라진다. 북한이 협상과 핵폭탄 만들기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6자회담을 무한정 지속하다가는 난감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베이징 축은 여전히 회담의 장래를 결정할 최대 변수이다. 미국과 중국이 합심하여 북한에게 ‘대량살상무기가 필요하지 않는 체제’로의 변화를 강압할 수만 있다면 핵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병술(丙荗)년에는 핵문제가 그렇게 풀려나갔으면 좋겠다. 새해를 밝히기 위해 두둥실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면서 품어본 희망사항이다.

김태우 /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뉴욕주립大 정치학박사(핵정책/핵전략 전공)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경기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한국핵은 왜 안되는가?>, <저승바다에 항공모함 띄웁시다>, <미국 핵전략 우리도 알아야 한다>(2003), <주한미군 보내야 하나 잡아야 하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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