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조기에 협상장에 복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한국과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간 21일 미국 뉴욕 회동의 의미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의 불능화 중단과 핵시설 복구라는 악재가 돌출됐고 미국 대선국면의 본격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검증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보자는 것이다.
양측 6자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일단 현 국면을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상황악화를 방지하자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김 본부장은 “오늘 회동에서는 6자회담 차원에서 상황악화를 방지하고 조속히 불능화로 되돌아가서 북핵 불능화 2단계를 마무리하는 방안과 검증의정서를 어떻게 북한과 마무리지을 수 있는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음을 새삼 강조했다. 물론 본질적인 검증 협상의 내용은 손댈 수 없지만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김 본부장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검증의정서가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핵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라면서도 “다른 요소들은 북한과도 협의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우선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와 관련, 미국은 북핵 검증의 형식과 관련해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수정하는 방안을 집중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미 이런 의사를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측에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시료채취’라는 용어나 ‘국제적인 기준’이라는 용어를 북한이 원하는 것으로 바꿔줄 경우 북한의 거부감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북핵 신고서를 플루토늄 항목과 우라늄농축 및 핵확산 항목으로 구분해 후자의 경우 비공개 양해각서로 처리한 경험을 활용해 검증의정서도 일부 항목에 대해 북.미간 비공개 문서로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것이 북한을 설득해 6자 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한 수순으로 분석된다.
한.미는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본부장은 “중국과 다른 당사국들과 함께 대북 설득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방안도 (힐 차관보와) 협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경우 미국이 새로운 검증 수정안을 제시할 경우 이를 토대로 조만간 대북 특사를 파견하거나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북한 설득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 8월 이후 5년 넘게 진행돼온 6자회담이 결국 아무런 성과없이 좌초하는 것을 중국은 무엇보다 피하려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신축성 발휘와 중국의 중재노력이 전개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결단이 이어질 경우 현 경색국면이 타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북핵 외교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동태가 심상치 않고 북한 군부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끝까지 강공 드라이브를 펴며 미국의 차기 행정부 출범때까지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로 했다. 일부에서 북한의 핵시설 원상복구 움직임과 관련해 대북 에너지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하는데 대해 한.미 6자 수석대표들이 말을 아끼며 “당장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힐 차관보)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