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장래 좌우할 싱가포르 북미 회동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북핵문제가 핵 프로그램 신고의 고비를 넘어 폐기단계로 나아갈 수 있느냐, 아니면 끝내 장기 공전상태에 빠지느냐의 갈림길이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정부 당국자는 8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 대해 6일 이 같이 말했다.

이번 싱가포르 회동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 등에 대한 북.미 간 이견으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가 시한인 작년 12월31일을 석달 이상 넘기도록 이뤄지지 않아 한국과 미국 등의 인내심이 한계에 가까운 상태에 달한 가운데 열리기 때문이다.

북.미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작년 12월 평양, 지난 2월 베이징, 3월 제네바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핵신고 문제를 협의해 왔고 필요할 때마다 뉴욕채널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왔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설득할 만큼 설득했으며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방안을 북한에 제시했다”면서 “북한이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린다면 핵신고 해결을 위한 에너지를 다시 얻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자국내 강경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북한을 설득해 오던 힐 차관보도 최근에는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정상회담과 미국 대선 등 줄줄이 예정돼 있는 대형 정치이벤트를 고려해도 핵신고 문제를 이번에는 돌파해야 한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소식통은 “이번 싱가포르 회동의 결과에 따라 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핵문제에 대해 내놓을 발언의 수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회동에서 핵신고의 고비를 넘는다면 두 정상이 `연내 핵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실어줄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북한을 향해 지금까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고강도 압박카드를 뽑아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는 8월 말이면 미국 양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가 결정돼 부시 행정부가 레임덕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도 변수다.

따라서 적어도 8월 초까지는 북한의 핵폐기 일정이 합의돼야 이후 부시 대통령의 힘이 빠지더라도 6자회담이 모멘텀을 유지하며 진전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달 중에는 핵신고의 고비를 넘고 6자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말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미국의 국내정치 일정을 보면 오는 8월이 지나가면 의미있는 결정이 있어도 행정부가 집행하기 어렵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재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행히 이번 싱가포르 회동에 대해 당국자들은 조심스럽지만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북.미가 플루토늄 관련 사항은 북한이 정식 신고서에 담아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지만 UEP와 핵협력 등 의견이 엇갈리는 사항은 신고서에서 빼고 `간접시인’ 방식으로 양측만 공유하는 `비밀의사록’을 통해 신고한다는데 합의하는 등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 당국자는 “김계관 부상이 어떤 생각을 갖고 오는 지는 힐 차관보도 모르고 있다”면서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다만 미국이 `같은 얘기 할 것이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북측이 나오는 것을 보면 뭔가 잘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UEP와 시리아 핵협력 의혹 등과 관련, 북한은 이번 신고 사항이 추후 검증대상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신중하며 미 강경파가 공세를 퍼부을 빌미만 제공한 채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얻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해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간접시인’ 방식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정부는 힐 차관보가 싱가포르 회동을 마친 뒤 9일 베이징을 방문하는 시점에 맞춰 천영우 본부장을 베이징에 파견, 회동 결과를 청취하고 6자회담 재개방안 등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회동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이달 말에 6자회담이 열릴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이라면 6자회담은 적잖은 기간 공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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