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후 많은 것이 분명해졌다.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 중국이 북한을 핵문제로 제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북핵문제의 당사자는 한국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북핵문제를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후에도 많은 것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시진핑의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와 기본입장이 바뀔 것인가? 북핵문제에 피로감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핵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가?
이처럼 분명한 것과 모호한 것으로부터 두 가지 입장이 부각 되었다. 첫째, 북핵문제의 핵심은 협상으로 폐기 불가능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억지력과 보복 타격능력이며, 따라서 외교와 협상에 의존하는 대북정책은 국방정책의 하위개념에 속해야 한다. 둘째, 북핵문제의 핵심은 외교와 협상, 비군사적 제재를 통해 최대한 국익을 확보하는 것이며,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에서 국방정책은 국제공조 대북정책의 배경에 머무르는 것이 옳다.
지금 한국과 세계에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모든 논의는 위의 두 가지 입장 중의 어느 하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북핵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은 ‘국방정책 우선론’과 ‘국제공조 대북정책 우선론’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명백한 북핵문제의 상황과 국가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 시간제한: 북한은 한국에 대한 대규모 도발 내지는 협박 내지는 제2의 한국전쟁 시에 한미동맹에 의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미국본토 핵공격 가능성으로 차단하고자 한다. 제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제4, 제5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발사를 예정하고 있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미국본토 핵공격이 가능한 ICBM 개발에 성공할 것이다.
주관주의 배제: 지난 20년 한국이 북핵문제를 다루면서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역대 대통령들의 개인적 정파성향, 개인적 정서가 문제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막아왔다.
결과적으로 북핵문제는 5년이라는 짧은 단임제 대통령들의 폭탄 돌리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북핵문제에서 역대 정부의 실패는 이제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핵문제에 대해 과연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II.
지난 20년간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던 이유는 북한의 핵개발은 협상으로 매매·폐기될 대상도 아니며,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방어적 수단도 아니고,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압박통일’의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북한은 핵을 한·미동맹의 해체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어떤 정부가 한·미동맹 해체로 북핵폐기를 유도하려 한다면, 북핵 폐기 없이도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핵이 주변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보호해 주는 핵우산’이라는 논리는 이미 통진당과 같은 종북주의자들에 의해 완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외부의 제재수단을 무력화 할 수 있었을까?
미국의 입장: 미국이 북핵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은 (1)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시, (2)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에 핵무기 판매와 같은 경우이다. 북한이 초토화를 원화지 않는 한 미국본토를 선제 핵공격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북핵문제는 군사개입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또한 우라늄농축에 필요한 시설의 분산가능성으로 군사공격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엔의 경우: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해 북한에 가하는 경제제재와 금융제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구멍’으로 인해 유명무실하며, 조금 더 강한 제재는 북한의 내성과 도발의 명분을 키울 뿐이다. 이것이 북핵문제의 경우 미국과 유엔이 북핵문제 해결을 중국에 매달리도록 만든 이유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정부의 대북정책은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으로서, 그 우선순위는 (1) 한반도 상황 안정(不戰), (2) 북한체제 안정(不混), (3) 북한 비핵화(不核)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핵이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북한체제의 불안정보다는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한국의 경우: 북핵 당사자 한국은 정서주의, 정파주의라는 주관주의로 북핵문제를 국민에게 호도하거나 그 심각성을 감춰 왔다. 제3차 핵실험 이후 느긋하기 짝이 없는 한국 국민의 태도를 보아도 명백하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함몰되어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을 심정적으로 부정하면서,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통해, 북핵용인의 정서적,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反美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북한의 핵개발은 이유가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10·4 공동선언을 통한 막대한 경제원조와 전시작전권이양 및 평화협정체결 등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평화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퍼주기를 중단하고, 북핵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자유민주주의 남북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였으나, 중국정부의 태도변화 가능성과 북한사회의 변화가능성이라는 중·장기적 상황을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중·단기적 과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함으로써 2009년 제2차 핵실험 이후 거의 4년의 시간을 흘려버렸다.
III.
이처럼 착잡한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북핵정책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개입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여기서 군사개입은 북핵시설 파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전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재래식 병기로 제2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미동맹의 승리는 가능하나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클린턴 미국 정부의 영변원자로 공습을 반대한 이유이다.
중국이 앞으로 북한에 지금보다 더 큰 압박을 가하거나, 북한정권을 바꾸고 한국 주도하의 통일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지도부의 말과 태도는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석유와 식량원조 중단이 북한정권을 붕괴시켜 수백만의 탈북자를 중국에 유입시킴으로써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중국정부의 주장에서 그 본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석유와 식량 원조를 중단시켰다고 하자. 곧바로 북한정권이 붕괴하고 수백만의 탈북자가 발생하는가? 곧바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시작되는가? 북한정권은 중국과 어떤 협상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붕괴될까? 이른바 ‘수백만’의 탈북자는 중국에 영구적으로 정착하여 영구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가? 한국은 탈북자 문제에서 수수방관하고 중국을 도와주지 않을 것인가?
‘중국의 북한제재로 인한 수백만 탈북자 발생’은 중국정부가 날조한 신화에 불과하다. 이점은 몇 개의 돌섬에 불과한 댜오위다오(釣魚島) 혹은 센카쿠열도(尖閣列島)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에서, ‘임전태세’를 외치며 군사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중국정부의 현 태도를 보아서 너무나 명백하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전쟁이 북·중국경의 탈북자 상황과 도대체 비교나 할 수 있는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태도는 자국이기주의의 극치, 혹은 핵을 앞세운 북한의 한반도 압박통일도 중국은 용인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이 핵공격을 받았을 경우만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의 해결을 한국이 미국, 유엔,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특히 박근혜 당선자와 시진핑 주석 간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중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는 있더라도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가 없다.
‘국제공조만을 통한 평화 만들기’는 ‘우리민족끼리 평화 만들기’와 방향만 다른, 그러나 주관주의에 함몰되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한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결론적으로 대북정책은 국방정책의 하위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검토해야 할 문제는 ‘한국의 핵무장이 국익과 국민 그리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인가’이다.
IV.
2013년 2월 15일 동아일보 논설 “고개 드는 애국적 핵무장論, 현실도 고려해야”는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모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핵개발에 착수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하고, 한미동맹의 손상까지 감수해야 한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미국이 등을 돌리면 정치·경제적으로 잃을 게 더 많다. 북한에 대해 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할 근거도 잃게 된다. 중국은 한국의 핵무장에 반발할 것이며, 일본을 자극해 군사적 재무장과 핵무장을 촉발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구책은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미국의 ‘확장된 핵 억제력’, 즉 핵우산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선 북한 핵 폐기의 논리와 한반도 비핵화 촉구 근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 엎은 사고이며,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도 않다. 중국의 반발 역시 중국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며, 중국의 자국이기주의와 북한의 핵 위협 하에서 한국은 일본의 핵 무장을 저지할 방법도 논리도 없다.”
미국의 반발과 미국의 ‘확장된 핵억제력’에 대해서는 2월 17일 워싱턴포스트의 칼럼 “핵 보유국 북한과 사는 법을 배워라(Learn to live with a nuclear North Korea)”가 대답이 될 것 같다.
“확장된 핵 억제력에 대한 신뢰성 -미국의 동맹국을 위협하는 적을 초토화하겠다는 워싱턴의 능력-은 더 문제가 있다. 일본, 한국, 대만과 북한의 이웃들은 핵무장한 북한이 이들 국가만을 위협할 경우 미국이 북한과 대항할 것을 주저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런 우려는 정당하나, 그 논리적 대응은 미국의 안전보장에 지금처럼 전적으로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핵이건 아니건 스스로 억제력을 개발하거나 강화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군비경쟁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가장 현실적이며 김정은의 들뜬 말폭탄(heated rhetoric)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 수단일 것이다.”
위 컬럼을 쓴 테드 갈렌 카펜터(Ted Galen Carpenter)의 결론은 ‘뾰죽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는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살자’는 것이다. 물론 그는 미국정부의 정책을 대변하고 있지 않지만, 외교·국방 전문가로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 차라리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카펜터(Carpenter)의 주장은 미국이 북핵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북한이 한국을 재래식 혹은 핵으로 공격하면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미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위협할 경우, 미국은 동맹국을 돕자니 자국민이 큰 피해를 입고, 동맹국을 돕지 않자니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어느 결정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 해결책은 오로지 분쟁 당사자들이 해결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동아일보 논설은 제목과는 달리 비현실적이고 과거에 고착된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V.
이제 우리는 북핵문제의 본질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시야를 확보해야만 할 때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유감스럽게도 출범이 될 수가 없다. 이 정책의 핵심은 ‘도발에는 응징, 신뢰구축에는 본격적 지원’이지만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신뢰구축 가능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정책도 존재의미를 상실하였다. 북한의 추가 도발과 핵실험을 이미 고려하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을 세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혹시나…’라는 신뢰구축 가능성에 허송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핵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독자적 핵 억제력의 확보를 중심으로 하고,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국제공조에 의해 북한체제의 변화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재평가, 재정의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길이며, 한반도 비핵화의 첩경이고,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그러나 며칠 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한·미 양국 대통령이 결정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으며, ‘여권에서 나오는 핵무장론은 국익을 무시하는 경솔한 주장’이며, ‘군은 꼭 무력의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외교와 협상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북핵문제에서 ‘국방정책으로 평화 지키기’가 아니라 ‘국제공조만으로 평화 만들기’라는 위험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김장수 내정자는 현 상황에서 우선 그의 주장을 정확하게 근거 지워야 하며, 필요하면 국민과 언론은 정책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효성과 안전성을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그러하다는 것은 절대로 근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역대 대통령의 대북정책 실패에서 이미 이 점을 확인하였다.
국민은 정부의 대북정책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위협에 굳건하게 한목소리로 대응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옳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비상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이 점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