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신고서 마무리 왜 늦어지나

“미국측이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일 ‘핵 신고서 제출→테러지원국 해제 절차 착수→6자회담 재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던 6자 프로세스 시나리오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미국의 준비 부족’을 제기했다.

미국이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김 본부장은 “북한이 제출한 1만8천쪽에 달하는 핵 관련 자료에 대한 실무적이고, 전문적 검토와 절차에 있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전문가들은 김 본부장의 발언에 대해 “북한과의 신고협상을 마무리지으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협상파들이 완전히 상황을 장악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 협상을 통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 협력설을 ‘간접시인’ 방안으로 처리하고 플루토늄 관련 핵시설과 물질, 프로그램의 폐기에 주력하려는 힐 차관보의 협상 방안에 대해 미국 여론 주도층 내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른바 비핵화 3단계(핵폐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전직 미국 외교관의 입을 통해 공개되면서 미국내 분위기가 다소 냉각되고 있다는 게 북핵 외교가의 관측이다.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달 2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6자회담 관련 토론회에서 북한은 3단계에 돌입해서도 영변 핵원자로, 폐연료봉 재처리공장, 냉각탑 등 영변의 플루토늄 핵관련 시설만 해체하고 이미 확보한 핵물질이나 핵무기는 폐기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런 정도라면 미국이 앞장서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강경파들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국면이다.

물론 미 국무부가 즉각 나서 프리처드 소장의 발언을 일축했지만 그 파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최근 미국에 제출한 1만8천여쪽에 달하는 핵 관련 자료를 1차 검토한 결과 북한이 지금까지 37㎏의 플루토늄을 생산한 것으로 파악돼 미 정보 기관들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37kg이라면 북한이 그동안 주장했던 30㎏보다는 많은 것이지만 미 정보기관들이 전에 추정했던 40~50㎏ 보다는 적은 것이다.

김 본부장이 ‘미국이 준비 안된 이유’로 핵 자료에 대한 검토와 분석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이 자료의 1차 분석결과 드러난 플루토늄 생산량의 ‘불일치’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북한의 핵 자료는 무기 생산을 위한 플루토늄 재처리의 주요 3단계(1990, 2003, 2005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 가운데 1990년을 전후한 시기의 플루토늄 생산량은 과거 90년대 1차 핵위기의 발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북한은 당시 90g의 미미한 양만을 생산했다고 주장해 10kg 안팎을 생산했을 것이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분쟁을 겪었다.

결국 이번에도 과거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 양의 불일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최종 관건이 되는 양상으로 비화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불일치 문제가 장애요인이 되긴 하겠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라면서 “검증 방안이 완벽하면 그것은 북한 핵활동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중요한 것은 신고한 내용은 모두 검증 가능해야 한다”면서 “검증 기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신고된 내용은 자료와 현장 방문, 시료채취, 여러 전문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간 전문가 협의에서 차후 문제의 소지를 제거할 만큼 완벽한 검증방안을 도출할 수 있느냐가 6자회담의 미래를 좌우할 관건이 될 전망이다.

만일 북.미간 협의가 예상보다 지체될 경우 6월중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 6자회담의 개최가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시간이 계속 지체되면 적어도 8월까지는 핵폐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올해 내에 핵폐기를 완료한다는 큰 그림 역시 단순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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