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상징’ 파괴 이끌어낸 美 주역들

힘겹고 지루한 북한과의 협상 끝에 북한 핵시설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영변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이끌어낸 최고 주역은 단연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다.

2005년 초 주한 미국대사에서 ‘북핵 해결사’로 발탁된 힐 차관보는 꺼져가는 북핵 협상의 불씨를 살려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10.3합의를 잇따라 이끌어내고, 마침내 북핵 불능화와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을 맞바꾸는 2단계 이행을 관철시킨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코소보 특사를 맡으며 이미 분쟁 해결사로서의 명성을 높였던 힐은 지구상 마지막 분단지역인 한반도의 최대 난제인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의욕에 넘쳤지만, 처음엔 북한 측과의 협상은 커녕 북측 인사들을 만나기 조차 어려웠다.

힐이 북한측 협상 파트너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려면 부시 행정부 내 외교 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던 대북 강경파들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딕 체니 부통령이 지휘하는 강경파는 이들의 대면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공식 대좌가 이뤄지는 경우엔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도 제약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을 방문해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힐 차관보의 시도는 체니 부통령의 제지로 물거품이 되곤 했다.

힐 차관보는 이 같은 곤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했고, 노련한 협상가인 김계관 부상과의 호흡을 맞춰나감으로써 2005년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다.

큰 줄기를 잡은듯 하던 북핵 협상은 대북 강경파들의 공세 속에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까지 겹치면서 끝없이 경색됐고 북한은 2006년 미사일과 핵실험을 잇따라 강행, 북핵 협상은 완전히 물건너가는 듯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다 공화당이 참패한 2006년 미국 중간선거가 맞물려 힐과 김계관은 베를린에서 다시 마주 앉을 수 있었고, 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2.13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곡절 끝에 BDA문제가 해결된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복귀와 영변핵시설 가동중단이 성사됐으며,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해제하고 대규모 에너지 지원을 실시하는 내용의 10.3 합의가 도출됐다.

영변 냉각탑 폭파는 결국 이 같은 북핵 2단계 합의가 숱한 곡절 끝에 마무리됐다는 상징적 이벤트인 셈이다.

이 처럼 험난했던 북핵 협상을 이끈 주인공은 힐 차관보이지만, 그에게 거의 협상 전권을 부여하고 체니 계열의 강경파들의 공세로부터 그를 보호해낸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 6년간에 걸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로 입증된 순간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적극적인 대북 대화 노선으로 이끌어낸 것도 라이스 장관이었다.

이런 점에서 라이스 장관 역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를 있게 한 주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스의 조언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결심한 부시 대통령 역시 냉각탑 폭파를 이끈 최고 지휘자임은 분명하다.

북핵 협상이 BDA문제나 일본인 납북자, 북한의 핵신고 지연 등의 난제에 걸쳐 비틀거릴 때 부시가 힐을 성토하던 강경파들의 손을 들어줬다면 오늘의 냉각탑 폭파는 결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힐의 지시 아래 발로 뛰며 냉각탑 폭파를 관철시킨 일선 지휘관은 단연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이다.

힐 차관보가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자마자 한국과장으로 불러들인 성 김은 지난해 영변핵시설의 가동이 중단된뒤 가장 먼저 현지에 투입돼 불능화의 청사진을 만들고, 핵기술자들을 이끌고 수없이 영변을 넘나든 불능화 실무팀장이다.

성 김은 불능화 뿐 아니라 북핵 협상이 고비에 처했을 때 마다 힐의 명령을 받고 평양에 파견돼 끊임없이 돌파구를 모색한 특급 밀사였다.

힐은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성 김의 이름을 빈번히 거론하며 “외교관이 될 때 방사선 보호복을 입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말하는 등 영변 핵시설을 묵묵히 오가며 임수를 수행하는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이 넘겨준 방대한 핵문서를 평양에 들어가 받아온 것도 성 김이었고, 27일 냉각탑 폭파 현장에 미국을 대표해 참석한 관리도 성 김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 김은 냉각탑 폭파를 이끌어낸 실무 주역임에 틀림없다.

이밖에 유리 김 북한담당관을 비롯한 미국측 대북 협상팀도 냉각탑 폭파를 이끈 주역으로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리 김 담당관은 2.13 합의 직후 미국 기술팀과 빈을 방문해 IAEA측과 불능화에 대비한 실무협의를 벌였으며, 힐 차관보와 함께 방북하는 등 북한측과의 주요 협상 때마다 막후 지원을 맡았던 인물이다. 유리 김은 다음달부터 힐 차관보 특보로 자리를 옮겨 북핵 협상에서의 지원자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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