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둘러싼 한반도 정세 해빙 조짐

한동안 얼어붙었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굵직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펼쳐지면서 해동기미를 보이고 있다.

우선 취임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대북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17일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을 포함, 남북 간에 고위급 외교채널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연락사무소 개설 제안과 관련, “과거 방식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북한에 처음 상설적인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임 전부터 ‘상호주의’를 주창하며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에 주력해온 이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미국 언론을 창구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 대통령은 기존 입장과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그는 “과거 정권은 남북 관계를 6자회담을 통한 핵 해결보다 중요시 했으나 새 정부는 한반도 핵포기에 중점을 두고 6자회담 협상과 보조를 맞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6자회담 협상과 보조를 맞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부시 정부가 6자회담 교착의 원인이었던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 일부 강경파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간접시인’ 방식을 수용해서라도 우회로를 찾으려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북.미 협상의 진전 등 현실을 감안해 한국도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은 북.미 간 비밀문서에 ‘간접시인’방식으로 담고 플루토늄 항목만 공식 신고서에 담자는 정치적 타협안을 북측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내역을 검증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국은 검증이 끝나기 전에 대북제재 가운데 일부를 해제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말하자면 핵 신고라는 고비를 넘고 10.3합의에서 규정한 비핵화 2단계 조치에 포함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WP와 인터뷰에서 핵신고 문제와 관련, “북한이 어느 정도 인정했는지 최종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으나 어느 정도 간접 시인했을 것으로 본다. 북한의 특수성으로 봐 그 정도가 되면 시인한 것으로 보고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협상 국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부시 행정부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는 북핵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외교가는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측 구상처럼 북한의 핵신고를 즈음해 테러지원국 해제가 단행되고 이어 북핵 6자회담이 재개돼 핵 신고내용 검증과 비핵화 3단계인 핵폐기 문제를 논의하는 등 북핵 협상은 ‘다음단계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외교당국자는 “핵신고의 메인파트는 북의 플루토늄과 관련한 핵시설이 대상이며 그게 아직 안나왔다”면서 “1~2주 지난 뒤 잘되면 중국이 6자회담 프로포즈해서, 희망사항은 5월중 열려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전에 신고서가 만족할 수준의 형태로 접수되면 그 즈음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테러리스트 지원국 해제, 적성국 지정을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고와 동시에 전후로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시간의 제약 등을 감안해 적어도 올 8월까지는 북핵 협상에서 핵신고 이상의 의미있는 성과를 도출하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8월의 의미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도 각별하다. 8월8일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중국은 북핵 문제가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현재 중국은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하면 이를 6자회담 참가국에 회람하고 곧바로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수순에 접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6자회담 당사국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해 환영을 표시한다”면서 6자회담의 재개 시기와 관련, “중국은 당사국들과의 협상의 진전 상황을 지켜보며 적절한 시기에 차기 6자회담 개최문제를 건의할 것”이라고 말해 조만간 6자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측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국과의 핵 신고 협상을 타결지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만간 베트남과 중국 방문 길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고비고비 마다 중국을 방문해 ‘개혁행보’를 과시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일 이번 외유가 성사될 경우 북한내부의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다.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공개적인 비난을 개시한 이후 남북관계는 냉각되는 쪽으로 진행중이다.

북.미 관계, 또는 북핵 협상에서 급진전이 도출되는 상황에서도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을 경우 이른바 ‘통미봉남(미국과 협상하고 남측은 외면하는 전술)’의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매우 적극적인 대북 메시지를 보낸 이후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상당기간 지켜본 뒤 ‘비난공세’에 나선 만큼 ‘웬만한 카드’에는 쉽게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서서히 국면이 풀리는 양상이며 적어도 8월까지는 적극적인 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북한과의 관계설정 등 전략적 과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효율적인 대책마련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대선 정국이 본격화된 이후, 나아가 차기 미국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북핵 협상과 북.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