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교착상황 ‘설 연휴 이후’ 타개되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싸고 장기 교착상황에 빠진 북핵 협상이 설 연휴 이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지 외교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관심은 미국과 중국, 한국 등 핵심 당사국들이 북한을 설득하거나 협상재개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일단 잇따른 외교이벤트에서 느낄 수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등 비핵화 2단계 조치를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평양을 찾아 북측과 긴밀한 협의를 가졌다.

2일 베이징으로 돌아온 성 김 과장은 기자들에게 ‘북한 측에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촉구했으나 직접적인 성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에서 보듯 자신의 방북 결과를 언론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성 김 과장이 3일 워싱턴으로 돌아간 뒤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과거 성 김 과장은 북한과의 협의 과정에서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문제와 직결되는 알루미늄관을 직접 전달받아 미국으로 가져온 적이 있지만 이런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북한이 모처럼 평양에 들른 성 김 과장에게 뭔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내용을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주 평양을 찾은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활동도 주목해야 할 주요 외교이벤트였다. 왕 부장을 만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확실하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북핵 6자회담에 대해 핵폐기를 위한 합의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주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외교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강석주 외교부 수석부부장을 배석시켰으며 2005년 6자회담 교착국면 타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왕 부장을 만난 김 위원장의 발언이라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면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대응 등을 분석한 뒤 북한측이 정확한 속내를 드러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미국내 움직임에 외교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선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달 30일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대학에서의 강연에서 핵프로그램신고와 관련, 북한이 30-4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이 5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온 힐 차관보의 발언은 핵 신고와 관련, 북한에 융통성있는 접근을 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힐 차관보는 “우리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UEP 문제도 북한측이 미국의 의혹을 풀어주는 정도면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풀이했다.

힐 차관보가 이런 발언을 하는 동안 미국내 학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단계적 해결방안’이 나오고 있는 점도 눈길을 모은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존 박 연구원은 “우선 북한이 정확하게 신고할 수 있는 부분들부터 신고하게 만들고 핵 신고를 연대별로 세분화하면 완전한 핵 핵신고가 이뤄질 때까지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 싱크탱크(두뇌집단)인 헨리 스팀슨센터의 앨런 룸버그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UEP가 없다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핵 신고서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언급하고 싶어할 수 있다”며 “모든 핵 프로그램을 단 하나의 핵 신고서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마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나 적성국교역금지법 해제 중 하나를 해 주고 나머지 하나는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를 마친 뒤 해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교소식통들은 이런 다양한 방안들이 현재의 교착국면을 우회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북한측도 ‘협상의지’를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단계적 방안을 지렛대로 교착국면이 풀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시의적으로 볼 때도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바라는 한국이나 중동 정책에서의 실책을 북핵 문제에서 보충하려는 미국,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입장 등이 결합돼 올 가을까지 파국이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점에서 설 연휴가 끝나고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전후해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북한측이 전술적으로 ‘시간끌기’를 할 경우 섣부른 양보안을 제시해 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경계감도 함께 나오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핵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보인 태도를 분석하면 일관된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단계적으로 입장을 바꿔나갔음을 알 수 있다”면서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개입되면 조만간 상황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나치게 성급한 대응은 삼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