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개발…시작부터 오늘까지

경수로 건설사업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그 태동도 어려웠지만 지난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 이후 끊임없는 중단위기를 겪어왔고, 이제는 200만㎾ 전력지원을 골자로 한 우리 정부의 ‘중대제안’으로 또 한번의 고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경수로 사업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산물이기는 하나 시작의 역사는 멀리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태면 통일부 장관 외교보좌관은 “경수로 건설사업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사업으로 생전에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 안다”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권 보좌관은 외교부 직원으로 북한 금호지구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직원 신분으로 2년여 근무한 바 있다.

자력갱생의 경제발전 모델을 채택했던 북한으로서는 석유 대체 에너지원을 원했고, 그 일환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끊임없이 추진해왔으며, 결국 1차 핵위기를 거치면서 경수로 발전소 건설로 현실화됐다는 것.

북한은 1959년부터 1980년까지는 원자력 기초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췄으며 박천과 평산, 선천 등에 우라늄 광산과 가공시설 마련하는 등 기본시설 구축에 주력했다.

북한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노력은 1980년대 본격화된다. 소련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IS 2000 이라는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온 것.

이 원자로는 그 후 영변에 건설돼 현재도 가동중인 5㎿ 원자로의 선배 격이다. 이 때 북한은 폐연료봉 저장시설과 방사화학실험실도 지었다.

북한은 1986년 1월 영변 원자로를 흑연감속로 방식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고(故) 김일성 주석은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원했다고 한다. 경수로 원자로가 세계적 추세인데다 효율이 높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

그렇지만 북한의 원자력 가동은 얼마 가지 못했다. 영변 원자로를 이유로 NPT(핵무기비확산조약) 가입을 강요받게 되자 1989년에 가입 서명을 거부하고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이후 소련과 440㎿ 경수로 4기를 신포지역에 짓기로 계약을 맺고 신포지역에서 러시아 조사단이 지질 조사와 발전소 건설 부지 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국제사회가 포착하고 북한에게 NPT 가입을 촉구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아예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9년 말부터 소련의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북한이 추진해 온 대망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소련 기술자들이 ‘손을 털고’ 귀국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2년 영변 핵원자로를 문제로 한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1993년에 1차 핵위기로 치닫게 되면서 북미간에 핵공방이 시작된다.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1989년 가동 중단이후 1992년까지의 시기에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를 계기로 북미간 긴장이 한껏 고조되는 등 1차 핵위기가 고조됐으나, 그 해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동이 성과를 내면서 가까스로 핵동결이 유지됐고, 4개월 후인 10월 핵동결 대신 중유제공과 경수로 건설을 제공키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이뤄지면서 위기는 봉합됐다.

이 당시 북핵 문제의 해결의 ‘키’로 경수로 제공이 나왔던 것은 김일성 전 주석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의 아이디어라는 얘기도 없지 않다.

제네바 합의 후 경수로 공급 협정을 하는데서도 샅바 싸움은 지속됐다.

북한은 러시아가 수년간 추진해왔던 건설 계획을 그대로 이어받기 위해 그에 필요한 ‘돈’만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경수로 건설 경비의 70%를 대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맞섰고 결국 1994년 10월 경수로 공급협정에서 ‘한국형’ 경수로가 낙착됐다.

다만 북한이 ‘한국형’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보여 정식 명칭은 ‘100만㎾ 2기’로 표현됐다.

현재 함경남도 금호지구의 신포 경수로 건설 현장은 1980년대 후반 러시아 조사단이 지질조사를 한 뒤 부지로 선정한 곳과 근접해 있다.

경수로 사업은 2003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1995년 3월 착공됐으나 공사가 지연됐고 2002년 10월 2차 핵위기가 불거지면서 공정률 35%선에서 중단된 상태다.

KEDO 참여국인 미국과 일본은 명백히 사업을 중단하라는 입장이고, 우리 정부는 이미 11억2천만달러의 공사비를 투입한 마당에 그럴 수 없다고 버텨오다가 이번에 경수로 대신 200만㎾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중대제안을 냈다.

정부는 그러나 경수로 건설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가 이뤄지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신뢰하는 상황이 되면 경수로 를 복원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여건을 감안해보면 이는 실현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문수(梁文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생산할 수 있는 총 전력량은 700만㎾ 정도이나 가동률이 20∼30%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전기 200만㎾를 제공한다면 이는 북한에서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전력량 만큼을 공급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로 미뤄볼 때 200만㎾의 전력을 공급해준다는 중대제안은 북한으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저버리는 선택일 수도 있다.

전력의 대남 종속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6.17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중히 검토해 답변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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