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후진기어’..분주해진 한미 외교채널

북한이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라는 `극약처방’에 가까운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미 외교채널이 다시 분주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 미국 행정부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방침 의회통보, 영변 냉각탑 폭파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징적인 이벤트를 통해 큰 가닥을 잡는 듯 했던 북핵 문제가 `역주행’할 조짐을 보이자 한국과 미국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신속대응에 나선 분위기다.

북핵 불능화라는 `2단계’ 문턱을 넘어서지도 못하고 원점 회귀한다면 지난 수년간 인내와 끈기를 갖고 이끌어온 6자회담의 성과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을 방문중인 외교통상부의 고위당국자는 3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만나 북한의 영변시설 원상복구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두 사람은 면담에서 북한의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북핵 문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과잉대응 보다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부의 이런 기조와 맞물려 힐 차관보는 당장 4일 중국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베이징에서 5일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을 갖고 이번 사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힐 차관보의 중국방문에는 성 김 국무부 북핵특사가 동행할 예정이어서 한미간에 상당히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힐 차관보가 북한에도 자신의 방중사실을 통보한 만큼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회담장에 나타나게 될 지 주목된다.

만약 김 부상이 어떤 형태로든 회담에 참여한다면 북핵 3단계로의 진전에 걸림돌이 돼 왔던 북한의 테러지원국 문제와 북핵 검증체계 구축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를 볼모로 다시 `핵 도박’을 시도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가 테러지원국 해제문제인 만큼 이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의견차를 해소하는데 협상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북한측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한국, 미국, 중국은 북한을 설득해 핵불능화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집중 협의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당국자는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이 불능화 작업을 재개하도록 하고, 핵시설 원상회복과 같은 극단조치를 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완전하고도 철저한 검증체계를 마련하는 문제에서 한 발짝도 양보할 뜻이 없음을 거듭 표명하고 나서 북핵문제는 당분간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3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해야 할 일은 검증체제를 마무리하는 것이고 검증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준 이상은 결코 아니다”면서 “그것이 이뤄져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우리는 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할 용의가 있다”고 선후관계를 명확히 한 것은 북한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북한이 영변 핵시설 복구라는 `후진기어’를 넣으면서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6자회담 당사국을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설 태세이지만, 결국 공은 북한 쪽에 여전히 넘어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의 시한을 정한 적이 없으나, 북한은 이미 6자회담 합의 등을 통해 핵불능화 시한에 약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문제에 고리를 걸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공은 지금도 북한 쪽에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도 “북한의 이번 조치로 인해 오히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해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인식을 보였다./연합